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 권장도서 선정  

 

 

바람이 없다면 우리가 바람을 일으키면 된다!

요네하라 마리, 상상력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세계 음식 문화를 인문학적 지식으로 새롭게 풀어낸 『미식견문록』, 하루 7권씩 읽어치운 책들을 기록한 서평집 『대단한 책』, ‘상식’과 ‘정의’에 반문을 제기하며 이異문화를 탐구한 『마녀의 한 다스』『문화편력기』 등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인문학자이자 에세이스트 요네하라 마리. 그가 이번에는 ‘발명 마니아’가 되어 찾아온다.
이 세상 온갖 난제를 해결하는 요네하라 마리식 발명 100가지가 담긴 『발명 마니아』는 엉뚱한 “발명으로 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속셈”으로 이루어진 요네하라 마리의 원더랜드wonderland다. 사유를 잃은 시대에 던지는 그의 유쾌한 상상력은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나아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환기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재미있고 신나기만 한 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세계 정세까지, 허를 찌르는 놀라운 발상

 

  이 책은 방대한 분량만큼 다양한 범위의 흥미로운 소재가 돋보인다. 궁극의 교통 체증 탈출법, 코골이 방지법, 한겨울에 손 시리지 않게 누워서 독서하는 법같이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한 번쯤 불편을 느껴봤음직한 것에서부터 빈 라덴 체포법, 태풍에 대비한 자구책, 해수면 상승과 사막화를 막는 법 등 세계 정세와 환경 문제에 이르는 저자의 관심사를 망라한다. 범인이 진실을 자백하게 하는 방법이나 연휴가 줄어들지 않는 달력처럼 발상 자체가 돋보이는 발명도 많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특징은 각각의 발명이 고정관념 비틀기나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싹텄다는 점이다. 그것이 요네하라 마리만의 독특한 아이디어와 재치 넘치는 문장과 만나, 짧지만 깊이 있는 내용으로 문제의 핵심을 관통한다.
  예컨대 요네하라 마리는 ‘놀이’란 비생산적이고 비실용적이라는 편견에 의문을 갖고 ‘만약 노는 만큼 에너지가 절약된다면?’ 하고 상상한다. 놀 때 생기는 에너지를 동력으로 전환하는 장치를 갖춰 놀이터나 피트니스 센터에서 생기는 에너지를 활용해보자는 것이다. 그것을 펌프와 연동해 아파트 저수탱크의 물을 채울 수도 있고, 공용 공간의 전등을 켜거나 엘리베이터용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대목은 제법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것으로 다가온다.
그만의 위트로 마무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요즘 복도랑 계단 전등이 잘 안 들어오나? 좋아, 지하 피트니스에서 땀 좀 흘리고 올까.”
(…) 머잖아 사전에서 ‘놀다’를 찾으면 ‘즐기면서 에너지 절약과 환경 보호에 공헌하는 일’이라는 뜻이 나올지도 모른다.
-「노는 만큼 에너지가 절약된다면」(195쪽)에서

 

  「궁극의 팍스 아메리카나」는 미국이 더 이상 전쟁을 강행하지 않도록 지구상 모든 나라를 일제히 미국에 합병하는 발명이다. 이 설정은 다소 황당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인류 전원이 미국 시민이 돼야 미국인과 공격 대상 국민의 목숨의 가치에 차이가 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공격 대상국 자체가 없어지니 전쟁을 일으킬 이유 또한 없어지리라는 대목은 씁쓸한 현실을 절감하게 한다. 나아가 그는 실상 미국이 전쟁을 시작할 때마다 그 부산물인 재외 미군 기지가 세계 곳곳에 늘고 있음을 구체적인 자료로 제시하며, 결국 이 ‘프티 미국령 네트워크’가 엄청난 기세로 지구를 뒤덮고 있음을 꼬집는다.
  패권주의에 대한 날 선 비판에 요네하라 마리 특유의 촌철살인이 더해져 허를 찌르는 통쾌함도 맛볼 수 있다.

 

“폭탄을 사용하는 것은 그만둬주게. 부탁이야!”
“박사, 뭘 이제 와서 인도주의자인 척하기는!”
“그런 게 아니야! 장기를 못 쓰게 되면 곤란하단 말일세!”
-「승부에 져도 실리는 왕창 챙기는 기술」(402쪽)에서

 

“나한테 이 열화 우라늄탄 귀고리 어울릴까?”
“어머, 부시 손님은 뭐든지 다 어울리세요. 캡슐 폭탄 목걸이도 딱이에요.”
-「대립 회피증을 극복하려면」(407쪽)에서

 

 

그림까지 직접 그렸다
상상력이 표현력을 낳았다

 

  또 한 가지, 이 책에서 이목을 끄는 것은 핵심을 제대로 포착한 본문 일러스트다. 그림에 서명된 ARAIYAYO(아라이 야요)는 실은 요네하라 마리의 다른 이름이다. 그의 동생인 이노우에 유리는 「에필로그」에서 이를 언급하며, 그가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그림을 따로 공부한 건 아니라고 한다. 그러니 예를 들면 ‘고양이는 그릴 수 있지만 개는 어렵’게 그렸다고. 하지만 꽤 ‘맛깔스럽다. 쓱쓱, 넉살 좋고 편리하게 발명품들을 잘도 그렸’다(뒤표지 이우일 추천사에서). 요네하라 마리의 글맛을 사랑하는 많은 독자들에게 각각의 발명에 더해진 그의 그림은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이러한 글의 형식 자체도 그녀의 발명 중 하나"

요네하라 마리만의 흥미롭고도 진지한 글이 완성되다

 

언니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뭔가가 떠오르면 그것과 씨름하는 모습이 재미있고 좋았습니다. 언니의 자유로운 정신이 춤추는 것이 내 눈에 분명히 보였기 때문입니다. (…) 언니는 늘 세계 정세에 분노하고, 환경 파괴를 염려하며, 애완동물을 귀여워하면서 진지하게 발명을 생각했습니다. 언니밖에 생각해내지 못할, 언니밖에 못 쓸 글이 완성됐습니다.
-「에필로그」(507~508쪽)에서

 

  요네하라 마리의 글에서는 구심력과 원심력이 동시에 느껴진다. 하나의 문제를 끝없이 파고들어가는 집중력에서 놀랄 만큼 예리한 비판이 나오고,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뛰어넘어 과거와 미래를 폭넓게 바라보는 통찰은 사유의 폭을 무한히 넓힌다.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경계를 지워보고, 호기심을 잃지 않는 태도가 원천일 것이다.


  『발명 마니아』는 이 무경계 지식인의 ‘궁극의 상상력’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서 비범한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실의 여러 가지 문제를 다양한 발명으로 바꾸어서 말하는 이 작업은, 그러고 보면 말을 통해서 세상을 연결하는 ‘통역’과 결국 다르지 않은지도 모른다. 이러한 글의 형식 자체도 그녀의 발명 중 하나’(「옮긴이의 말」에서)라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