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가 쓴 국내 첫 책
차향 나는 산문과 <도쿄 이야기> 감독용 각본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는 가깝게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와이 슌지로 시작해 허우 샤오시엔, 빔 벤더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짐 자무시 등 자기 획이 분명한 작가주의 감독들이 경애하는 감독으로 늘 꼽힌다. 정적인 화면과 부감촬영, 사람 앉은키 높이에 앵글을 맞춘 ‘다다미 숏’, 그리고 무엇보다 시절의 변화 속에서 달고 쓰게 와닿는 사람 관계를 바라보던 그윽한 눈길. 별다른 기교도 자극도 없이 평범한 일상을 평범한 채로 보여주는 그의 영화들은 “거장”이라는 찬사가 어색할 만큼 소박하기 그지없지만, 그는 재료, 즉 삶 자체에서 깊은 맛을 느끼고 그 맛이 스스로 배어나도록 요리할 줄 안 완벽주의자며 장인이었다. 그의 정수는 맛을 섞는 데보다 잡맛을 걷어내는 데 있었다. 이런 오즈 야스지로의 삶은 더도 덜도 없이 자신의 영화와 같아서, 젊었을 적 혼란을 주었을 종군 경험과 몇 번의 연애를 빼면 1903년 12월 12일부터 1963년 12월 12일까지 딱 육십 평생, 영화감독으로서의 소박하고 담백한 일들로만 이력을 메우고 있다.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는 오즈 야스지로의 저서로는 국내 처음 소개되는 책이다. 그가 유력 매체들에 기고했던 산문 / 중일전쟁에 징집돼 중국을 전전하던 당시 쓴 편지와 일기 / 자신이 만든 모든 영화에 대한 여유 있고 넉살맞은 자평 / 그의 대표작으로 “세계 영화사에 남을 걸작”이라 불리는 <도쿄 이야기>의 감독용 각본을 한데 엮었다. 오즈 야스지로는 평생 54편의 영화를 찍었고 그중 34편, 그러니까 필모그래피의 절반 이상과 자신의 스타일을 1937년 징집 이전에 완성했다. 거기다 그는 가뜩이나 적게 남기던 말과 글을 나이 들어서는 더더욱 삼갔다. 그런 만큼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는 감독이자 인간 오즈 야스지로의 구석구석을, 영화인에서 나아가 산문가로서도 탁월한 그의 글솜씨로 들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책이며,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개인이 역사의 한 장을 지근거리에서 바라본 귀한 자료가 될 것이다.


“오즈 야스지로 시대의 영화 작가는 대개 현재와 같이 말이 많고 수다스럽지 않았다. 이야기할 것은 있어도 불언실행을 취지로 삼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과묵을 좋은 것으로 보는 시대의 통념이기도 했을 것이다. 따라서 오즈의 문장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315쪽, 「해설」



모두와 같은 실수, 모두와 같은 고민
영화만큼 은은한 오즈 야스지로 산문


“(<학생 로망스 젊은 날>은) 스키를 끼워 넣은 학생 희극이었지. 주인공은 하숙에 방 내놨다는 알림판을 건 채 살고 있는 학생인 거야. 누군가 방을 보러 올 거잖아, 보기 싫은 놈이면 아, 지금 내가 막 빌렸습니다, 라는 얘기를 해서 돌려보내요. 예쁜 아가씨가 오면 방을 양보하고 자기는 희생을 하며 나오는 거야. 하지만 방에 물건을 두고 나오지. 잊은 물건 가지러 돌아오는 얼굴을 하고 여자와 이야기할 계기를 만든다는 거지. 이런 스토리를 당시 후시미 아키라하고 내가 여러 개 생각했어요. 이 무렵의 활동사진, 후시미와의 협동이 많잖아요. 저녁이 되면 후시미와 둘이서 긴자로 나가지. 마시고 밥을 먹고 이야기하면서 후카가와의 내 집에 가요. 그다음에 또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거나 축음기를 걸거나 깊은 밤이 되면 홍차를 마시거나 하면서 말이야. 그러면 날 밝을 즈음에는 스토리가 하나 완성이 되거든. 반드시 하룻밤에 완성됐었지.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145쪽, 「센부리 풀처럼 쓰다」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는 크게 네 개의 부로 나뉘어 있고, 책의 절반가량 되는 세 개의 부가 오즈 야스지로의 산문이다. 1부 <모던 보이 산문>은 그만의 유머와 재치와 애틋함이 배어나는 본격 산문으로 젊은 오즈 야스지로의 재치와 유쾌함과 속정을 보여주고, 2부 <왠지 모르게 한 줄>은 중일전쟁 당시인 1937년 9월 예비역 부사관(지금의 하사 계급)으로 징집돼 1939년 6월까지 중국에서 남긴 편지와 일기로서 오즈 야스지로의 인간적인 면들을 두루 만날 수 있다. 3부 <센부리 풀처럼 쓰다>는 어느덧 나이를 지긋하게 먹은 오즈 야스지로가 일본의 유명 영화 잡지인 <키네마준포キネマ旬報>와 나눈 회고로, 자신의 영화를 친근하고 농 섞인 말로 하나하나 돌아보며 배우와 영화 뒷이야기와 추억을 털어놓는다.


“또 하나의 눈”을 뜬 네팔 여행 이후, 백두산 천지 여행에서도 동기들과 떠났던 크루즈 여행에서도 홀로 떠난 유럽여행에서도 과거의 시간을 긍정하며 앞으로의 새로운 나를 꿈꾼다. 인생의 초반기를 잘 가꾸고 선물처럼 건네받은 이 시간들은 여행의 행위를 통해 더욱 풍성한 여정이 된다.


“지금 융슈 강을 사이에 두고 적과 대치하고 있다. 하천의 폭은 이삼백 미터로 저녁때라든지 적의 말소리까지 들려서 점호를 하는 것도 알 수 있다고 함. 적, 아군 모두 하천에 물을 길으러 간다. 이때는 서로 쏘지 않는다. 쏘지 않는 것이 암암리에 묵계가 되었다. 전쟁도 오래 끌어 길어지면 이런 이야기가 생겨난다.”
-69~70쪽, 「왠지 모르게 한 줄」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에 실린 여러 형식의 산문 중에서 오즈 야스지로를 가장 속 깊이 보여주는 건 단연 「종군 일기」일 것이다. 오즈 야스지로가 징집당해 간 건 일본이 루거우차오 사건을 조작해 일으킨 중일전쟁으로서 치졸한 전쟁이었지만, 장교도 아닌 하급 부사관으로서는 전쟁의 큰 그림을 알기 어렵고, 다만 이국땅에서 겪어나가는 병사의 하루하루와 집 떠난 고생, 그 사이사이의 여흥과 음풍농월, 그곳에서 엿본 인간 군상의 모습과 그리움 등을 오즈 야스지로다운 꼼꼼함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산문은 당시 전쟁터의 모습을 세밀화처럼 보여주는 기록인 한편, 이미 서른네 편의 영화를 만들고 성숙해진 어느 자유로운 예술가가, 인간성이 원초로 치닫는 곳에서 제 본성을 지키려는 분투기처럼도 읽힌다. 개인이 거스르기 힘든 큰 소용돌이 안에서도 유머와 측은지심, 생활감 등을 아껴 보듬는 모습에서, 완벽주의자 감독이 아니라 그저 웃고 슬퍼하고 실수하며 살아가는 더없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요즘 코가 안 좋다. 전쟁에 올 때까지는 그다지 느끼지도 못했는데 작년 연말 언저리부터 왠지 모르게 코로만 호흡하는 게 괴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코가 안 좋은지 인후가 안 좋은지 알 수 없지만 입을 벌리고 자야 하고, 코가 막혀 불쾌한 경우가 매우 많다. 이도 곳곳에 충치가 생겨 때때로 아프고, 머리카락도 꼭대기 쪽이 숱이 적어져서 걱정스럽기 짝이 없음. 돌아가면 바로 의사한테 치료받지 않으면 안 되지만 머리 문제는 어찌할 도리가 없음. 서른일곱이나 되면 여기저기 부품이 상하고, 특히 전쟁에서는 사용 방식이 난폭하니까 전체가 빨리 고장 나는지도 모른다.”
-73쪽, 「왠지 모르게 한 줄」



오즈 야스지로의 대표작 <도쿄 이야기>
오즈가 고쳐 적은 ‘감독용’ 각본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는 세계 유수의 영화감독과 비평가 들이 “영화사에 남을 걸작”으로 꼽는 <도쿄 이야기>의 감독용 각본을 실었다. 1953년 공개된 <도쿄 이야기>는 전후 일본의 전통적 가족제도의 붕괴를 그린 오즈 야스지로의 대표작으로 감독 스스로는 “내 영화 중에서는 멜로드라마의 경향이 가장 강한 작품”(165쪽)이라고 말하는 영화다. 감독이 쓰던 각본은 활판 인쇄한 원고를 끈으로 철한 것인데, 그 위에는 감독이 직접 정정하고 보태고 삭제한 신과 메모가 빼곡히 적혀 있다.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에 실은 각본은 오즈 야스지로의 이런 메모들이 반영된, 말 그대로 ‘감독용’ 각본이다. 각본과 완성된 영화에 큰 차이가 없기로 유명한 오즈 야스지로가 <도쿄 이야기>에서는 예외적인 모습을 보인다는데, <도쿄 이야기> 감독용 감본은 그 자체로 완벽한 이야기를 읽는 재미에, 완성된 영화와 대조하며 감독의 여러 생각을 유추하는 재미까지 선사할 것이다.


“<도쿄 이야기>는 54편의 오즈 야스지로 영화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일이 가장 많다. 각본의 제작 의도에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그리고 싶다”라고 기술한 이 영화는 <외아들>에 내걸었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아포리즘을 역시 작품의 모티프로 삼고 있어서, <외아들>과 마찬가지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일본의 근대화·도시화 과정에서 지방과 도쿄의 관계에 대응한다. 그 의미에서 이 영화는 제목이 나타내는 것처럼 오즈 야스지로 ‘도쿄’론의 총결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오즈는 시나리오 집필과 동시에 콘티뉴이티도 고안하고 있었으니까 제1고〓결정고였지만(게다가 완성 작품은 예정한 길이와 거의 어긋남이 없었다고 한다), 이 작품의 경우는 흔치 않은 예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20~321, 「해설」



추천사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어떤 감독이 되고 싶은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늘 오즈 야스지로를 떠올린다. 보고 또 봐도 새로운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는 데다, 인생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을 동시에 발견하게 하는 오즈의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는 없으니깐. 그래서 늘 궁금했다. 일평생 그런 독자적이고 놀라운 작품을 고집스레 만들어온 오즈는 실제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매일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아갔을까. 그런데 드디어 이 책을 통해 인간 오즈를 만난다. 그의 진짜 목소리를 듣고, 진짜 생활을 엿본다. 자신의 일상과 세계를 차분히 관찰해 담담한 어조로 기록한 오즈의 글을 읽다 보면 때로는 은근한 미소가 떠오르고, 또 때로는 복잡한 심경을 금할 수 없다. 그도 모두와 같은 실수를 하고, 모두와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보통의 인간이라는 사실에 왠지 모를 위로와 깊은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늘 여유와 유머를 간직하면서도 일관되게 사려 깊고 진지한 그의 시선과 태도에는 새삼 경탄하고 만다. 역시 오즈다.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윤가은 영화 <우리들>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