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감수성의 선두주자, 거침없는 이야기꾼
문제적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에 관한 모든 것, 24편 인터뷰

 

마음산책 영화감독 인터뷰 시리즈의 여덟 번째 책 『쿠엔틴 타란티노』가 출간되었다. 그간『짐 자무시』『팀 버튼』『우디 앨런』『코언 형제』『대니 보일』『클린트 이스트우드』『스탠리 큐브릭』을 펴내며 세계적 영화 거장의 내밀한 목소리를 오롯이 전했던 마음산책만의 시리즈다.
이름 자체가 ‘장르’인 영화감독들이 있다. 1990년대 영화계를 풍요롭게 장식했고, 세기를 넘어 2012년 <장고: 분노의 추적자>까지 여전히 생동하는 그만의 영화를 선보이고 있는 문제적 현역 감독, 이 책은 최근 차기작 제작 소식을 전하기도 했던 쿠엔틴 타란티노 인터뷰집이다.  
1992년 <저수지의 개들>을 앞세우고 작가이자 감독, 배우로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미국 독립영화사에 일대 사건으로 자리한다. “폭력과 냉소, 수다스러운 대사와 예사로운 총질, 비순차적 이야기 구조, 허를 찌르는 반전, 영화 속 영화 이야기, 대중문화, 카라바조의 회화처럼 당돌한 사실주의, 살벌한 분위기와 맞물린 우발적 코미디”(「옮긴이의 말」)를 펼치며 1990년대 영화 안에서 독보적인 영화적 체험을 안겼다. 또한 연이어 <펄프 픽션>을 통해 엄청난 영화적 흥취를 선사한 그를 두고 평단과 관객은 “열띤 영화팬의 감성과 영화에 대한 확고한(어쩌면 순진한) 신념”을 함께 갖춘 채 “각본을 쓰고 연출하며, 영화의 형식과 문법을 현란하게 개척하고 도치하고 재구성”한 ‘새로운 영화’의 아이콘이라 명명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10대 시절 대학을 다니며 양육과 학업을 병행한 홀어머니 밑에서 외아들로 자랐고 중학교를 중퇴한 후 배우 수업을 받았으며, 비디오 가게에서 최저 임금을 받으며 5년간 일하는 동안 삼류영화부터 예술영화까지 모조리 섭렵하면서 “나의 영화”에 대한 꿈을 꾸었던 타란티노. “백인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영화를 독학으로 읽힌 그가 대담하게도 할리우드의 정형화된 공식을 바꾸어놓기까지, 그에게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쿠엔틴 타란티노』는 전대미문의 이야기꾼 쿠엔틴 타란티노의 재기 넘치는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사람들에게 그의 최근 영화가 아닌 그의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는 ‘강렬한’ 언어들이 온전히 담겼다. 제작부터 시나리오 집필, 연출, 촬영, 조명, 편집, 홍보까지 영화에서 “인간의 심장 박동이 느껴지길” 원한 그의 진면목이 책 곳곳에 자리한다. “유례없이 신선하고 독창적”인 20세기의 감독에서 <킬 빌><그라인드 하우스><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그리고 2012년 <장고: 분노의 추적자>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쿠엔틴 타란티노의 현재진행형 영화 인생을 24편의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타란티노에 관한 방대한 인터뷰 가운데, 가장 통찰력이 돋보이며 유익하고 알찬 것을 선별했음은 물론이다.

 

 

통속과 폭력을 통찰하다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에 관한 몇 가지 오해

 

쿠엔틴 타란티노는 1992년 1월 28세의 나이로 <저수지의 개들>을 들고 선댄스 영화제에 나타났다. 자칭 영화광 청년의 등장은 유머와 폭력의 혼합에 천부적 재능을 가진 감독의 출현을 알렸다. 하지만 “조숙한 재능, 튀는 대사, 장르를 다루는 솜씨”에 대한 칭찬과는 반대로 “공연히 폭력에 집착한다는 비판”도 만만찮았다. 이후 자신의 영화가 지닌 폭력성에 수없는 “심문”을 받았던 그는 그럴 때마다 꿋꿋하게 반론을 펼쳤다.

 

“폭력은 저의 예술적 재능의 일부예요. 이런 제가 사회 문제나, 실제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온갖 일들을 걱정한다면 그건 자승자박하는 셈이에요. 소설가나 화가, 음악가도 이런 고민에서 자유롭잖아요. 
폭력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만화 같은 폭력이에요. <리썰 웨폰>(리처드 도너, 1987)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이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에요.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어요. 이에 비해 제가 추구하는 폭력은 더 거칠고 더 사납고, 보는 이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어요. 슬슬 약을 올리기도 하고요. 언제 비디오 가게에 가시거든 공포영화나 액션/모험영화 코너에서 아무거나 골라 보세요. 십중팔구 제 영화보다 더 잔인한 폭력 장면이 담겨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전 무엇보다 불안감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둬요. 진짜 인간에게 닥치는 사건을 다뤄요. 거기서 파문이 이는 거예요.”
-68쪽

 

“제게 폭력이란 분명히 미학적 소재예요. 영화 속 폭력을 싫어한다는 말은, 영화 속의 춤추는 장면을 싫어한다는 말과 같은 무게를 지닐 뿐이에요. 저는 춤추는 장면도 좋아하지만,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제가 춤추는 장면을 만들지 말라고 우길 수는 없잖아요. 알아요, 폭력이 가득한 영화를 만들면 싫어할 사람이 많다는 걸. 그것은 그들이 오를 수 없는 산이기 때문이에요. 그들이 어리석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런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뿐이죠. 흥미를 느끼려고 애쓸 필요도 없어요. 그들이 볼 만한 영화가 얼마든지 있으니까. 하지만 여러분이 그 산을 오를 수 있다면, 저는 여러분이 오르고 싶어 할 만한 것을 선보이겠어요.”
-98쪽

 

타란티노에게 영화 속 폭력이란 “진짜 인간에게 닥치는 사건”에 천착한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사회적 책임이 아닌 “예술적 책임”만 지겠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러한 그만의 취향이 그를 특색 있는 감독으로 만들었다. 그 안에는 저급한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 그 순수한 재미를 예술로 승화하고자 한 그의 미학이 가로놓인다.


 

웃기면서 장엄하고 잔인하면서 아름답다
세련된 예술미와 철저한 현실미, 그리고 영화에 대한 사랑

 

LA의 쿨 가이인 그에게 영화의 장르란 기실 각자의 영화라는 뜻일 따름이다. 그는 다만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영화가 구현할 수 있는 극한의 재미를 추구한다.

 

“전 모든 영화가 장르영화라고 생각해요. 존 카사베츠가 만든 영화도 장르영화예요. 그건 ‘존 카사베츠 영화’죠. 그 자체가 장르예요. 에릭 로메르 영화도 제 눈에는 장르예요.”
-151쪽

 

이는 이야기를 가공하는 놀라운 상상력, 유머와 리얼리티 감각, 통속이라는 무기를 갖춘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장르의 재미를 대변한다. “미학적 감수성은 마치 데이비드 레터먼과 거스 밴 샌트를 합쳐놓은 것 같아요. 한마디로 극현실주의ultra-realism랄까, 엉뚱하고 웃기면서 뻔뻔하게 보이기도 하거든요”라는 피터 브루넷의 말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뻔뻔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모든 상황을 코미디로 바라보는 경향은 확실히 있어요. <저수지의 개들>도 웃기려고 만든 거예요. 관객이 웃고 있을 때 별안간 벽에 피가 튀는 순간, 전 그런 순간을 좋아해요. 그러고 나면 더 많은 웃음을 유발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고문 장면 후에 조Joe가 색깔 이름을 배정하는 장면을 보면서 관객은 다시 웃거든요. 특히 마이클 매드슨이 면도칼 들고 춤추는 동안 관객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저는 사랑해요.
극현실주의는 부조리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 삶의 현실이 부조리하니까요. 평소 패스트푸드점에 가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대화의 내용처럼. 제가 설정한 인물들은 대중문화를 통해 자신을 규정하고 서로 소통해요. 모두 그 문화를 잘 알아요. 만약 거기서 누군가 나타나 롱펠로를 운운한다면 다들 생소한 이름이라 멀뚱멀뚱하겠죠. 하지만 마돈나나 맥도날드, 또는 엘비스 프레슬리 이야기라면 모두 금방 알아들을 거예요. 알아들을 뿐 아니라 각자 하고 싶은 말도 있을 거예요.”
-65~66쪽

 

『쿠엔틴 타란티노』에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적 세기를 가로지르는 모든 이야기가 존재한다. “영화계에 쌓여 있는 방대한 보물 중에서 원하는 것을 골라” 교직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또 전 시대적 영화의 자장을 확장하는 감독. “자신의 목소리”를 갖추고 자기 “가슴속에 있는” 것을 거침없이 옮기는 그의 영화는 세기를 넘어 여전히 문제적이다. 거기에는 영화에 대한 그의 철저한 사랑이 있다.

 

영화감독이 되려면 영화를 사랑해야 해요. 만약 저처럼 영화를 유별나게 사랑하고, 열성껏 보여주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틀림없이 성과를 거둘 수 있어요. 각본가가 되고 싶으면 일단 글을 쓰세요. 사실 글쓰기가 시작하기 제일 쉬워요. 단, 남들이 읽고 싶어 할 만한 글을 쓰면 안 돼요.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자기 가슴속에 있는 걸 써야죠.
-2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