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무라 쇼헤이  今村昌平

영화감독, 다큐멘터리 작가, 영화제작자. 1926년 9월 15일 도쿄에서 중산층 집안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연극을 보러 다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징용을 피하다 종전 이듬해인 1946년 와세다대학교 서양사과에 진학했으나 학업보다는 연극부 활동에 매진했다. 이 무렵 가정교사로 일하는 한편 전후戰後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암시장을 드나들며 돈을 벌고 훗날 그의 작품에 자주 투영될 뒷골목 문화를 익혔다. 1951년 대학교를 졸업하고 쇼치쿠 오후나 촬영소에 조감독으로 입사해 오즈 야스지로, 이케다 다다오, 오바 히데오 등 명장들 밑에서 일했으나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가와시마 유조였다. 3년 뒤인 1954년 닛카쓰 촬영소로 자리를 옮겨 1956년 가와시마 유조 감독의 <풍선>으로 각본 데뷔, 1958년 <도둑맞은 욕정>으로 감독 데뷔했다. 첫 감독작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돼지와 군함> <일본 곤충기> <붉은 살의> 등으로 명장의 자리를 굳혔다. 1966년 더 자유로운 영화제작을 위해 닛카쓰에서 나와 이마무라 프로덕션을 차리고 <인류학 입문> <인간증발> <신들의 깊은 욕망> 등을 내놓아 명성을 날렸다. 그 뒤 한참 다큐멘터리에 전념하다 극영화로는 11년 만인 1979년 걸작 <복수는 나의 것>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이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2회 수상의 영광을 안긴 <나라야마부시코>와 <우나기>를 비롯해 <간장 선생>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등 말년까지 철저하고 속 깊은 영화를 남겼다.
2006년 5월 30일 도쿄에서 간암으로 사망했다. 일본영화대학의 전신인 일본영화학교를 세운 존경받는 교육자로서, 현재 일본 영화업계 종사자 중 상당수가 이 학교 출신이다.


마음산책 저서  『우나기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