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요르가즘이라 부르자”

현대미술을 전공한 요가 강사의 생활 수련기


이제 요가는 조금 덜 진지하고 덜 명상적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우리 주변에 흔하고 접하기 쉬운 실내 운동이 되었지만, 매체에서 보여주는 요가란 곧잘 신성한 수행으로 연결된다. 고난도 동작들과 함께 명상이 수반되는 신비로운 이미지는 여타의 실내 운동과 결을 달리하는 요가만의 특징이면서 한편으로 초심자의 진입을 주저케 하는 요소기도 하다.

현대미술을 전공하고 5년 차 요가 강사로 살고 있는 저자 황혜원은 요가가 꼭 거룩하거나 성스러운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몸을 움직일 때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듯한 전율을 느껴보라고, 구태여 마음챙김에 얽매여 ‘요가의 맛’을 잃어선 안 된다고. 몸을 한껏 구겼다가 활짝 펼치면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혈도 절로 뚫린다. 그는 어딘가 불량하고 조금은 제멋대로인 요가인의 일상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임으로써 야트막한 벽을 넘어오라고 손짓한다.

‘요르가즘(yorgasm)’이란 조어는 ‘요가+오르가슴’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단순히 요가 수련을 통한 몸과 마음의 전율이라는 뜻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언어유희를 넘어 요가를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느낀 보람과 쾌감, 한발 더 나아가 저자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정신을 일컫는 표현이기도 하다. 해보고 싶은 건 하고, 해봐서 재미있으면 계속하고, 그러다 또 다른 재미들이 나타나면 주저 없이 따라나선다. 오르가‘슴’과 달리 표기를 요르가‘즘’이라고 한 연유 또한 여기에 기인한다.

책에는 요가 강사의 웃기고 슬프고 반짝였다 추락하기도 하는 서른다섯 개의 일상 산문과 저자가 중점적으로 수련하고 가르치는 ‘아쉬탕가 요가 프라이머리 시리즈’의 서른다섯 동작이 번갈아 나온다. 특히 요가 맛보기는 인상적인 필치의 요가 드로잉과 설명으로 큰 호응을 얻었던 텀블벅 연재 가운데 ‘어렵지 않은’ 자세들을 선별했다. 차근차근 동작을 따라 하며 저자의 웃픈 일상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몸도 마음도 탄탄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물론 나는 요가 강사이기 이전에 평범한 30대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이다. 그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인간적이다 못해 약간의 똘끼도 가미되어 있다. 아무리 수련을 해도 사라지지 않은 걸 보면 타고난 부분은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은 작업과 수련을 통해 똘끼와 공생하는 법을 익히고 있다. 세상에 이로운 방향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9쪽


‘요르가즘’이라는 제목만으로도 느낄 수 있겠지만, 범접할 수없는 숭고한 이미지의 요가에 대한 허들을 낮추고 싶었다. 아무리 머리로 빠삭하게 알더라도 단번에 자세를 만들 수는 없다. 내가 그랬다. 이것은 나의 경험이다. 그래서 일단 해보고, 다시 해보고, 계속해보면서 천천히 맞춰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11쪽



“난 짜르르 필이 왔어”

매트 하나와 몸뚱이 하나로 느끼는 지극한 기쁨


저자에게는 하나의 정체성에 구애받기보다 다양하게 살아보고, 살아남는 일이 늘 삶의 화두였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면서 동시에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발레, 수영, 복싱에 이어 요가를 배웠다. 그러다 왜 요가를 하고 나면 유독 기분이 좋아지고 전율하는지 이론적으로 알고 싶어 자격증을 취득했다. 순전히 호기심과 재미 때문이었다. 다니던 복싱 클럽에서 우연한 기회에 진행한 요가 수업 덕에 ‘요가 강사’란 타이틀이 추가되었다. 그야말로 ‘어쩌다’ 요가 강사가 된 것이다.

여러 요가 중에서도 그가 천착하고 있는 것은 ‘아쉬탕가 요가’다. 동작이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온몸을 골고루 짜낸 느낌이 들고, 수업을 따라가기보다 자기 숨을 따라가는 마이솔(self practice)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내가 지금 할 수 있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은 오롯이 숨쉬기뿐이다”라는 말로 무념무상에 놓이는 기쁨을 설명한다. 고요한 공간과 매트와 몸뚱이 그리고 ‘이제부터 수련을 시작해볼까’ 하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누구든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셀프 수련이 기본인 아쉬탕가는 달리 말하면 그래서 더 어렵기도 하다. 매트를 깔기까지의 내적 갈등을 조절하는 게 요가원에 가는 것보다 힘들기 때문이다. 엄격한 의미에서의 수련이란 요가뿐만 아니라 식습관과 생활 루틴까지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저자의, 그리고 우리의 목표는 ‘요기’가 아니라 인생의 즐거움으로써 요가를 하는 ‘요가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어려운 단어나 설명 대신 쉽고 친숙한 표현으로 아쉬탕가를 맛보자. 일단 매트를 펼치고 생의 감각을 깨우는 요르가즘을 느껴보자.


“양손 허리! 발끝 포인트!”

양손을 허리에 두면 골반을 수평으로 맞출 수있고, 아랫배를 당겼나(우디야나 반다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리를 낮게 들어도 괜찮으니, 한쪽 골반이 들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무릎을 쭉 펴고 발가락을 이쑤시개처럼 찔러봅시다. 양쪽 엄지발가락끼리 빨간 실로 연결된 느낌을 찾아볼게요. 바닥에 있는 발가락을 누를수록 공중의 발가락이 조금씩 위로 올라갑니다. 누군가가 들어 올려주는 느낌이 들죠.

─157쪽


어제와 달리 각각의 아사나 속에서 여유를 느꼈고 그 온화함은 자신감으로 직결되었다. 지금 여기, 타인은 없다. 오롯이 나뿐이다. 내가 해내건 못하건 상관없다. 나만이 알 수 있다. ‘그래, 혜원아. 지금을 기억해. 건강한 느낌에만 집중해. 아사나가 아무리 유혹해도 좇지 마. 할 수 있으면 가고, 못하면 물러서. 괜찮아. 그게 진짜 수련이야.’

─205~206쪽



“잘 자빠져야 잘 일어난다”

사는 건 결국 엎어지고 나뒹굴면서 다시 일어나는 것


문보영 시인은 추천의 글에서 “그녀의 수련은 꾸준하게 넘어지기, 돌부리를 째려보고 다음 발걸음을 위해 내딛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수련은 요가뿐만 아니라 삶에도 적용된다. 한 동작을 완전히 몸에 익히기 위해서,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버티고 호흡해야 한다. 그 태도와 정신이야말로 요르가즘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 책에는 쓰고 그리는 프리랜서 요가 강사의 하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요가 수업을 열두 번은 해야 월세의 절반을 낼 수 있어 걱정하고, 요가 강사 때려치우라는 엄마의 말에 발끈했다가 세상 다정한 남자친구에게 위로받았다가 다시 생계 걱정에 타로 공부를 하기도 한다. 소소하게 슬프고 평범하게 즐겁고 이따금 분노하는 감정들은 요가를 통해 정화된다.

그러니까 결국 『요르가즘』은 요가를 통해 잃어버린 나를 되찾는다거나 구원을 얻는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하려는 말은 삶도 요가도 그리 엄숙하고 진지하게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독자에게 제때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은 만큼, 실컷 해보”라고 권한다. 자주 넘어지고 덜컹거릴지라도 자기 호흡과 속도에 맞춰 나다운 일상을 꾸려가는 재미를 느껴보라고 말이다.


고관절에는 압착 지점이라는 게 있다. 쉽게 말해, 무리해서 나아가면 안 되는 지점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뼈와 관절, 체격뿐 아니라 몸과 마음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모두에게서 같은 자세가 나올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골반 바보라서가 아니라.

─243쪽


어른이 되고 보니, 센 척하는 사람 치고 강한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부서지기 쉬운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 본능일 뿐. 어차피 몸뚱이는 뭐 늙고 병들기 마련이겠지만,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가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 현인 자세 취할 수 있다고 해서 다 현인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기 위해서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반짝이는 눈빛을 잃지 않으려면 반복되는 일상에 어떤 기준을 세워둬야 할까?

─277쪽



추천사


어떤 책을 읽을 때, 누구와 통화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나는 다시 전화를 걸고 싶었다. 오늘은 어떻게 살았어요? 어쩌면 이 물음은 “오늘 수련은 어땠어요?” 하고 묻는 것과 같을 것이다. 요가가 삶을 향한 수련이라는 말은 이제 내게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수련은 내 머릿속에 있던, 지루하고 엄격하고 다가가기 어려운 경지가 아니었다. 수련은 넘어지는 것을 잘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녀의 수련은 꾸준하게 넘어지기, 돌부리를 째려보고 다음 발걸음을 유쾌하게 내딛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따라서 사실 수련은 돌부리에 잘 걸리는 꾸준함을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자빠짐을 위한 수련, 돌부리를 위한 수련, 일어남을 위한 수련, 사랑을 위한 수련. 작가는 말한다. 계속하다 보면 어떤 흐름이 보인다고, 이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책과 함께라면 얼렁뚱땅 어딘가에 와 있는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명확한 목표 없이 꾸물거리는 나 자신과 화해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말하는 셀프 수련이 아닐까.

문보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