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의 촛불 같은 그 사랑, 그 사람을 놓치지 말자”
이해인 수녀의 신작 시 산문 44편


시인으로서 40년, 수도자로서 50년의 길을 걸어온 이해인 수녀는 지금도 부산 광안리 성 베네딕도 수녀원의 ‘해인글방’에 도착하는 편지들에 일일이 손으로 답장을 한다. 마음산책 신간 『그 사랑 놓치지 마라』는 이해인 수녀가 독자들을 향해 띄우는 사랑의 시 편지다.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 『기다리는 행복』 이후에 썼던 마흔네 편의 ‘러브레터’가 담겼다.
삶의 희망과 사랑의 기쁨, 작은 위로를 건네는 그의 새 편지에서 유독 눈에 띄는 건 ‘순간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메시지다. 암 수술 이후 오랜 투병 생활을 이겨낸 이해인 수녀는 먼저 떠나간 이들을 추억하며 삶의 유한함을 되새긴다. 그리고 저 멀리 반짝이는 빛을 좇기보다 ‘바로 앞의 내 마음, 바로 앞의 그 사람’부터 붙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살아갈수록 오늘 하루 한 순간이 소중합니다. 힘들더라도 조금씩 더 인내하고 감사하며 살아내는 모든 순간이 결국 신께 드리는 하나의 기도이자 이웃에게 바치는 러브레터가 아닌가 합니다. (…) 우리가 지상에서 서로를 챙겨주고 사랑할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것을, 친지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보면서 다시금 알게 됩니다. 여기 2017년 출간된 『기다리는 행복』 이후에 썼던 저의 새로운 글들을 모아 또 하나의 러브레터로 드립니다.
—「책머리에」에서


특히 『그 사랑 놓치지 마라』에는 책 출간을 기념하며 새롭게 진행된 이해인 수녀의 인터뷰가  함께 수록됐다. 또한 이영애 영화배우가 이해인 수녀에게 보낸 진솔한 화답의 편지는 매 구절 공감을 부른다.


얼마 전 여성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근거 없는 말과 험한 댓글로 오랫동안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런 슬픈 일이 있을까요. 저도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이상한 오해와 쉽게 단정 짓는 말들이 내게 던져지는 순간이 있지요. 그럴 때마다 조용히 수녀님의 시와 말씀을 새겼습니다. 평온하게 나를 다독이는 시들을 읽으며 “괜찮다, 괜찮아”라고 위로받았습니다.
—「수녀님께 드리는 편지」(이영애 영화배우)에서



“살아서 누리는 평범하고 작은 기쁨들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몸으로 글로 사랑을 실천해온 일생


이해인 수녀의 시와 그에 얽힌 메시지들엔 희망과 기쁨, 위로, 사랑의 마음이 계절별로 담겼다. 첫 장 ‘희망 다짐’에선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으며 새해 마음을 다진다. 암 투병으로 입퇴원을 반복할 때 병원에서 늘 슬리퍼를 신고 다녔던 이해인 수녀는 신발을 신고 문병 오는 사람을 부러워했던 걸 기억하며 ‘신발을 신는 것은 삶을 신는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또한 「고운 말」이라는 시를 소개하며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알려주고, 가까이 있어 그 소중함을 자주 놓치게 되는 공기와 햇빛도 새로이 보게 한다.
봄과 여름에 쓴 두 번째 장 ‘기쁨을 전하는 나비’에선 나비와 바다의 이미지가 강렬하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애도하고, 「바닷가에서」라는 시와 함께 “마음이 답답하고 좁아지려 할 때마다 바다를 꺼내 끌어안는” 나날을 노래한다. 세 번째 장 ‘나무에게 받은 위로’에선 삶의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내적인 힘을 키워야 함을, 수도원에서의 소소한 생활을 소개한 네 번째 장 ‘익어가는 삶’에선 반세기의 수도 생활을 이어온 이해인 수녀가 살아서 눈을 뜨고, 사람을 만나고, 하늘과 바다와 꽃을 보는 일상의 기쁨을 이야기한다.
다섯 번째 장 ‘수도원에서 보내는 편지’에는 특정한 수신인이 있는 편지들이 실렸다. 고등학교 동창생과 이웃, 동료 수녀님은 물론 영문학자이자 수필가인 고 장영희, 시인 손택수, 함민복에게 특별히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한 편 한 편 읽다 보면 이해인 수녀가 타인과 관계 맺고 소중히 인연을 이어가는 방식을 어깨너머 배우게 된다.


10주기 추모 모임을 잘 마치고 부산에 내려왔는데 다음 날 영희의 오빠 베드로 님이 쓰러졌단 말을 들었습니다.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말을 듣고도 희망을 가졌는데 바로 어제(2019년 5월 28일)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믿기질 않아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습니다. 그대가 준비하다 미처 출간을 보지도 못하고 떠나 큰 아쉬움을 남겼던 책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100쇄 기념본을 들고 기뻐하던 오빠였는데! (…) 영희도 놀라서 말할 것 같네요. “오빠 이렇게 빨리 오면 어떡해?” 하고.
—「사랑의 연금술사가 된 벗, 장영희에게」에서



“살아서 남겨 놓은 사랑은 죽지 않는 거야”
이해인 수녀가 말하는 나와 타인, 세상과의 관계


『그 사랑 놓치지 마라』 출간에 맞춰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가 진행한 이해인 수녀의 인터뷰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화두를 던진다. 이해인 수녀는 갈라진 광장 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판단은 보류하고 사랑은 빨리 하라”고 말한다. 남을 함부로 평가하기보다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라는 의미다. “긍정적인 행동 하나가 희망의 촛불”이라는 그의 말을 가슴에 새기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랑에 한 발짝 더 다가선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란 저를 살게 하는 뿌리 같아요. 뿌리가 흔들리면 나무 전체가 위태로워질 뿐 아니라 그 주변도 불안해지죠. 그래서 조심조심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내 마음이 우선 안정되면 바깥의 현상에도 더 민감하게 조응할 수 있고요. 더 진한 감동, 더 세밀한 감사가 일어나죠. 마음은 강이 되기도 하고 바다가 되기도 해요. 무한대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선한 마음, 사랑의 마음으로 세상을 더 낫게 만들거나 구원할 수 있어요.
—「사랑으로 연결 지어질 나와 당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