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철학을 좀 배우셔야 할 것 같네요”
문학사의 아이콘 제인 오스틴의 빛나는 문장과 말들

 

<제인 오스틴 북 클럽>(2007)이라는 영화에는 다섯 여성과 한 남성이 나온다. 그들은 한 달에 한 번 만나 제인 오스틴의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북 클럽 멤버다. 그중 한 명은 이렇게 말한다. “역시 제인 오스틴이야! 인생의 만병통치약이지!”
그간 제인 오스틴의 영역은 독보적이었다. 어떤 문학작품보다 강력한 대중성을 확보한 채 오랫동안 수많은 영화와 TV 드라마, 연극, 라디오 그리고 다양한 리메이크와 각색물로 재생산되었다. 1999년 BBC가 ‘지난 1000년간 최고의 문학가’를 묻는 설문에서는 대문호 셰익스피어에 이어 2위에 올랐으며, 사후 200주년이던 2017년에는 영국중앙은행이 변경되는 10파운드 화폐의 새 모델로 제인 오스틴을 선정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 “증오, 고통, 두려움도 없이 항의, 설교하는 법도 없이 글 쓰던 한 여자가 있었다”라고 경의를 표한 바 있으며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 또한 “제인 오스틴은 모든 작가들이 꿈꾸는 별과 같은 존재다”라고 상찬했다. 세상을 떠난 지 200년이 지났는데도 전 세계는 여전히 그녀의 책을 애독하며, 여러 분야에서 ‘제이나이트(Janeite)’를 양산하고 있다. 그녀는, 그녀의 작품은 왜 새롭게 읽히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제인 오스틴의 장편소설 『이성과 감성(Sense and Sensibility)』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맨스필드 파크(Mansfield Park)』 『에마(Emma)』 『설득(Persuasion)』 『노생거 사원(Northanger Abbey)』, 중편소설 『샌디턴(Sanditon)』 『레이디 수전(Lady Susan)』 『왓슨 가족(The Watsons)』 그리고 그녀가 남긴 편지 161통 가운데 빛나는 문장과 말들을 엄선해 원문과 함께 엮었다. 문학사의 아이콘 제인 오스틴의 모든 것을 담았다. 

 

제인의 작품과 편지 곳곳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그녀는 당시 사회에서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이 직면해야 하는 힘든 경제적 상황과 불안한 사회적 지위 및 선택의 제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그 문제점들을 직시했다. 그리고 결혼과 사랑, 사교, 가족, 우정, 독서 등의 다양한 틀 안에서 인간의 본질과 세상사를 예리하게 관찰한 뒤 유머와 아이러니를 곁들여 묘사한, 작지만 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냈다. 제인 오스틴을 두고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이 결여된 작가라는 비난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영국의 섭정 왕자 조지의 사서였던 제임스 클라크에게도 당당히 밝혔듯이(“저는 저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저만의 방식대로 계속 글을 써야 합니다.”) 제인 오스틴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과 자신이 나아갈 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실천에 옮겼던 ‘영리한’ 작가였고 거기에 그녀의 위대함이 있다.
-「들어가며」에서

 

 

 

“그녀의 삶은 그녀를 작가가 되게 했다, 그녀의 말은 그녀를 전설이 되게 했다”
‘어떤 여인(A Lady)’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위대한 작가의 탄생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시대를 상기해보자. 그 유명한 『오만과 편견』에도 등장하지만 딸은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없었고 여성은 결혼할 때 지참금을 내야 했으며 결혼이 여성의 인생을 좌우하던 때였다. “결혼은 교육은 잘 받았지만 재산은 부족한 미혼 여성에게는 앞날의 유일한 대비책이었다. 결혼이 행복을 가져다줄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가난에 대한 최선의 예방책이라는 것은 틀림없었다.”(133쪽,『오만과 편견』) 나이 든 독신 여성이 경제적인 배경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비웃음거리로 전락하기 십상이었다. 제인 오스틴은 여성의 교육이 제한된 이 시대에 2년간 기숙학교를 다닌 것 말고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문학적인 집안 분위기에 힘입어 열한 살부터 꾸준히 습작을 했다. 경제적으로는 평생 여유롭지 못했으나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았으며 익명으로 책을 출간한다. 그녀의 조카는 고모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녀에게는 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독립적인 서재가 없었고, 대부분의 작업은 일상적으로 온갖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공동 거실에서 이루어졌다. 그녀는 하인들이나 방문객들 또는 가족이 아닌 그 누구라도 자신이 하는 일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늘 주의를 기울였다. 그녀는 얼른 치워버리거나 압지로 덮어놓을 수 있도록 조그만 종이에 글을 썼다. 집의 정문과 거실 사이에는 문이 열릴 때마다 삐걱 소리를 내는 반회전문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소한 불편함을 바로잡는 것에 반대했다. 누가 올 때마다 미리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들어가며」에서

 

독립적인 서재 없이 공동 거실에서 누군가 삐걱거리는 문소리를 내기라도 하면 쓰고 있던 조그만 종이를 숨기던 작가 제인 오스틴. 이름 또한 숨겼다. 1811년 처음 출간된 소설 『이성과 감성』에 이름 대신 ‘어떤 숙녀(By A Lady)’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오만과 편견』(1813)은 ‘『이성과 감성』의 저자’, 『맨스필드 파크』(1814)는 ‘『이성과 감성』 및 『오만과 편견』의 저자’, 『에마』(1815)는 ‘『오만과 편견』의 저자’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 『노생거 사원』과 『설득』은 제인 사후인 1817년에 합본으로 ‘『오만과 편견』 『맨스필드 파크』 등의 저자’로 출간되었다. 제인의 오빠 헨리 오스틴이 책에 ‘저자의 약전略傳’을 함께 실으면서 비로소 제인 오스틴이 저자라는 사실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하지만 익명 뒤에서는 어떤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여성들에게 강요되었던 가치관과 인습과 제도를 글로써 깨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흥미로운 인간형을 탐구하면서 세상사를 때론 풍자하고 사랑하고 연민하고 공감하고 이해했던 것이다. 

 

 

사람, 사랑, 삶에 대한 날카롭고도 유연한 통찰
원문과 함께 현대의 고전을 읽는 기쁨

 

혹자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이 정치적, 사회적 의식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혹은 오히려 반여성적인 시각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그녀의 작품을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이 지금의 독자들에게 늘 새롭게 변주되고 있는 것은 여기에 삶의 본질적인 요소가 가득하기 때문이라는 방증일 것이다. 통속적이랄 수 있는 소재도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로 만들어 대중을 흡인한다. 일상의 세밀한 관찰에서 비롯하는 생생함, 인간성에 대한 집요한 관심이 만든 빼어난 심리 묘사, 각 캐릭터를 마치 독자 곁의 누군가처럼 살아 있는 이로 승화시키는 힘 등이 그렇다. 인간과 그 삶이 처한 아이러니들을 누구보다 현실감 있게 그려내는 작가적 재능은 독보적이다. 

 

“다정한 마음보다 매력적인 것은 없어.”(61쪽, 『에마』)
불편한 일이 생길 때마다 남자들은 곧잘 빠져나간다.(80쪽, 『설득』)
“결혼은 책략이 필요한 일종의 거래 같은 거예요.”(135쪽, 『맨스필드 파크』)
“이기적으로 구는 건 언제나 용서해줘야 해요. 치유될 가망이 없거든요.”(152쪽, 『맨스필드 파크』)
“모든 세대에게는 그들 나름의 개선책이 있는 것 같아요.”(153쪽,『맨스필드 파크』)
“사람은 누구나 어떤 특별한 문제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상의 교육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문제 말입니다.”(173쪽,『오만과 편견』)
“누군가의 방식이 다른 사람의 법칙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야.”(186쪽, 『에마』)
“너의 행복을 가장 잘 판단하는 사람은 너 자신인 거야.”(255쪽, 『에마』)

 

이 책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 속 문장들을 사랑, 여자와 남자, 결혼, 인간에 대한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인 관찰, 패션과 춤과 아름다움, 가족과 사회와 우정, 독서, 완벽한 행복 등 아홉 가지 주제로 선별해 엮었다. 인간에 관한 통찰들이 가득한 제인 오스틴의 작품 속 명문장과 함께 특별히 수록한 편지들은 국내 최초로 번역해 소개했다. 언니에게, 조카에게, 오빠에게, 또는 당대의 유명한 백작부인에게, 당시 섭정 왕자의 사서 등에게 보낸 제인의 편지들은 18세기 영국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졌던 그녀의 작품과 개인으로서의 지극히 내밀한 생활, 글을 쓰는 여성 작가로서 성장해가는 오롯한 자의식을 엿볼 수 있어 제인 오스틴의 독자에게 큰 즐거움을 줄 것이다. 작품 속 보석 같은 문장들과 엄선한 편지들은 원문과 함께 실어 독서의 다양한 기능을 독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기쁨도 있다. 

 

제인 오스틴을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들, 제인 오스틴의 작품과 영화를 빼놓지 않고 본 사람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더 이해하고 음미하고 싶은 사람들, 제인 오스틴의 명문과 말을 따로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사람들, 제인 오스틴이라는 작가를 더 잘 알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아직 제인 오스틴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 이 모든 이에게 『제인 오스틴의 말들』을 가까운 곳에 두고 친구 하기를 권하고 싶다.
-「들어가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