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트북>의 원작자 니컬러스 스파크스
미국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의 유일한 비소설, 자전적 산문


<노트북> <베스트 오브 미> <디어 존> <워크 투 리멤버> <병 속에 담긴 편지> <라스트 송>.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영화들의 원작 소설가 니컬러스 스파크스는 발표하는 소설마다 베스트셀러가 되기로 유명한 미국 작가다. 20편이 넘는 그의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총 1억 권이 넘게 팔렸고, 그중 15편은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렇게 소설로 채워진 그의 작품 목록에 유일하게 소설이 아닌 책이 한 권 놓였다. 『일중독자의 여행』은 니컬러스 스파크스가 친형과 함께한 여행에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이다. 유명 작가가 되기 전 궁핍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여러 직업을 전전했으며, 불과 10여 년 사이에 어머니와 아버지와 사고사, 아들의 자폐 판정, 여동생의 뇌종양 사망 등 큰 불행을 겪어야 했던 그가 형과의 여행을 통해 다시 일상을 되찾는 과정을 소설처럼 그렸다. 
고된 인생 역정을 겪은 후 스스로를 일에 유배했던 니컬러스 스파크스는, 소설을 쓰고 다섯 명의 자녀를 키우며 바쁘게 살아가다 우연히 대학 동창회에서 소개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보고 형과 훌쩍 3주간의 세계 여행을 떠난다. 일중독에서 빠져나와 삶과 화해하기 위해, 세상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혈육인 형과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 칠레의 이스터섬,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킬링필드, 페루 마추픽추, 인도 타지마할 등 호화로운 여행과는 거리가 먼 이국의 유적을 돌며 세상엔 다양한 인생과 고난이 있고, 그러면서도 삶은 계속됨을 깨닫는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이전에 부모이자 아들 그리고 누군가의 동생임을 자각해가는 한 소설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주변을 돌아보고 삶의 희망을 찾을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인생을 바꿀 방법을 제시하는 책과 토크 쇼는 엄청나게 많고, 해답을 알려주겠다고 큰소리치는 전문가도 많다. 그러나 내가인생을 바꿔야 한다면, 나와 같은 일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바로 형이었다.
─59쪽


상실감을 피해 일중독에 빠진 소설가
형과의 여행으로 돌아보는 ‘지금’의 삶


예기치 못한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니컬러스 스파크스는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고통스러운 변수들을 겪고 나서 항상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계획을 세우고 한시도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스트레스와 압박 속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몰아세우던 그는 결국 일중독에 빠져 삶의 균형이 무너져버린다. 형은 그와 다른 길을 걸었다. 가족들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삶의 덧없음을 깨닫고 신앙을 잃었으며, 가지기 위한 삶이 아니라 매 순간을 누리면서 즐거운 삶을 살기로 선택했다. 서로가 이해되지 않는 그들에게 어느 날 여행이 운명처럼 다가온다.


“동생아, 넌 지금 내 말을 조금도 듣고 있지 않아. 살면서 기대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잊어버렸니? 일도 중요하고, 가족도 중요하지만, 신나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아니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즐길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모두 헛일이라고.”
형의 말에 수긍하며 눈을 감았지만, 아무래도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금만 그래. 우선순위가 달라서 그런 거야.”
“네 문제가 바로 그거야. 넌 항상 우선순위를 다른 데 둔다고.”
형이 한결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46쪽


여행을 통해 형제는 마침내 같은 노정에 올라 같은 곳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삶은 물론 떠나버린 가족의 기억을 꺼내어 매만지기 시작한다. 여행길에 오르면서 “가방에 노트북을 슬그머니 밀어넣었”던 저자는 형의 도움으로 서서히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데 익숙해지고, 상실감이 두려워 스스로를 일중독에 몰아넣었던 자신의 덧없는 과거와 작별을 고하며 새롭게 지금의 삶을 맞이한다.
그가 타인의 삶, 특히 소외당한 사람들의 삶을 주목하게 된 계기는 정확히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의 산문 곳곳에는 태평양전쟁 전후로 크게 달라진 삶이 때로는 자신의 일화로, 때로는 타인의 일화로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본성을 억누르고 사는 범상한 일본인을 주목하는 대신 더없이 솔직한 하층민과 서민을 주목하며, 큰 역사의 이면에서 실핏줄처럼 무시되다가 때로 통증으로 다가오는, 일본 사회의 모순이라 할 삶들을 요리조리 따지고 기억한다. 과한 동정 없이, 하지만 애정은 듬뿍 담아, 산전수전을 겪어본 사람답게 의젓한 웃음을 동반해 쓴 그의 글에서 거장의 배포며 어른의 너그러운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속으로는 나도 우리 어머니처럼 낙관주의자인 것 같다. 맞다, 낙관주의자도 가끔은 지나치게 걱정하거나 무리할 정도로 일한다. 그런데도 낙천주의자임은 틀림없다. 부모님과 동생을 잃고 슬퍼하는 순간에도 아이들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내 어린 시절이 내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결혼하기 전에 우리 가족은 다섯이었다. 남자 셋에 여자 둘. 내 아이들의 성비와 정확히 같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전 가족의 목소리는 점점 흐려지고 대신 우리 아이들의 행복하고 활기찬 목소리는 높아진다. 흔히 말하듯,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다. 
─403쪽


베스트셀러 작가의 이면, 진솔한 고백
영화처럼 드라마틱한 삶과 글쓰기 동력


순식간에 아빠가 되어 새 삶을 살면서도, 형과 나는 계속 함께할 기회를 만들었다. 잠시 형이 내가 하는 기형교정 사업을 도왔지만, 그해 말 나는 그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새 식구가 생기니 좀 더 안정적인 일이 필요해서 사업을 포기하고 1992년 초에 레덜리 연구소의 약품 영업사원으로 취직했다. 난생처음 공식적으로 최저임금 이상을 벌었다. 그때가 내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268쪽


『일중독자의 여행』은 기본적으로 형제의 남다른 여행기이지만, ‘베스트셀러 제조기’로서 모든 걸 가진 것처럼 보이는 어느 작가의 이면의 고뇌를 보여주는 진솔한 일기이자 삶을 바쳐 풀어쓴 작가 이력서이기도 하다. 니컬러스 스파크스는 1991년 첫 책을 낸 이래 지금까지 20권 넘는 소설을 낸 다작 작가면서도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고 반드시 영화화가 이야기되는 흥행 보증 수표다. 하지만 그의 시작은 생활고 속에서 공저로 쓴 자기계발서 『보키니』였고, 꾸준히 글을 쓰면서도 약품 영업사원이며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중독자의 여행』은 그런 삶마저 글로 승화해야 했던 한 소설가의 글쓰기 동력을 엿보여준다. 가족이 걸린 생계 때문이든 글쓰기에 대한 애착 때문이든 섬세하게 관찰하고 기억하고 글로 옮기는 사람이 결국 작가의 길에 오를 수 있음을 넌지시 들려준다.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늘 똑같은 얘기를 했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 그 얘기들은 전혀 싫증이 나지 않았다. 우리가 고개를 뒤로 젖히거나 무릎을 치며 웃으면 다른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가 그렇게 웃긴지 궁금해서 우리를 넘겨다보곤 했다.
실은 별것 아니었다. 그 얘기들이 웃긴 이유는 우리가 살아오고 견뎌낸 흔적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나쁘면 나쁠수록 우리에게는 더 재미있는 일화로 남았다.
갑자기 형이 조용해졌다. 따스하고 감정적인 얼굴이 되었다.
“좋은 시절이었어.” 형이 말했다.
“최고였지.”
─3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