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편집 공정으로 이름난 잡지 <뉴요커>

그 명성을 지키는 깐깐이 교열자 “콤마퀸” 이야기


1925년 2월 21일, 언론인 해럴드 로스와 <뉴욕타임스> 기자 제인 그랜트 부부가 뜻을 모아 잡지 <뉴요커>를 창간했다. 풍자와 유머로 무장하고 문학·예술·정치·사회 이슈에 대한 진지한 통찰을 갖추어 뉴욕과 미국의 여론, 나아가 세계 여론의 중심부에서 100년 가까이 세상을 읽는 가늠자 역할을 해왔다. 문학, 칼럼, 학술, 카툰 할 것 없이 쉬 지면을 내주지 않는 엄정함 때문에 글 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자리를 탐내는 잡지.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연재했고 맬컴 글래드웰이 전속 작가로 일하며 J. D. 샐린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필립 로스, 줌파 라히리 같은 걸출한 문인들이 반드시 거쳐 간 통과의례 같은 잡지이지만, <뉴요커>를 오늘날의 지위로 끌어올린 건 단지 위대한 작가들의 이름뿐만이 아니다. <뉴요커>의 명성에는 그 이름들의 무게를 감당하는 단단한 토대, 즉 교정·교열·취합·편집·팩트체킹 등이 철저히 분리돼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편집 공정이 있다. 그곳 교열부의 꼭대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메리 노리스다. 연필 중독자이며 구두점에 명예를 걸고 유머에 능한 깐깐이 교열자, 일명 “콤마퀸”. 

『뉴욕은 교열 중』은 <뉴요커>의 책임 교열자 메리 노리스가 40년가량 글을 다루며 작가들·동료들과 치고받은 에피소드를 돌이키고, 장막 안에서 <뉴요커>가 돌아가는 모습을 그리며, 구두점·대시·세미콜론·하이픈·아포스트로피 할 것 없이 문장부호와 영어 문법에 대해 전천후로 고찰한다. 웹스터 사전에 대한 <뉴요커>의 깊은 애정, 허먼 멜빌의 대장편 『모비딕(Moby-Dick)』의 제목에 누가 하이픈을 찍었는지 집요하게 추적하는 과정, 영어 대명사와 젠더 문제, 문장부호들에 담긴 의미, 비속어에 대한 생각이며 연필에 대한 애정까지, 일과 언어와 영어와 글쓰기와 개인사를 비집으며 코믹한 에피소드를 펼쳐낸다. 

메리 노리스는 1978년 <뉴요커> 편집부원으로 입사해 지금껏 교열자로 일하며, 1993년부터는 <뉴요커>에만 있는 직책인 오케이어(OK’er)를 맡고 있다. 오케이어는 주관적 견해가 필요치 않은 기계적 교열 업무를 넘어, 해박한 지식과 통찰을 바탕으로 의견을 나누며 인쇄 직전까지 원고를 책임지는 자리다.


페이지 오케이어(OK’er)가 되고 20여 년이 지났다. 이는 <뉴요커>에만 있는 직책이다. 잡지가 인쇄되기 전까지 편집자, 작가, 팩트체커(fact checker), 보조 교정자(second proofreader)와 함께 글을 질의·교정하고 관리한다. 한 편집자는 산문의 여신이 하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콤마퀸이라는 별칭도 있다. 글쓰기를 제외하면 나는 또 다른 일을 해볼 생각을 심각하게 한 적이 없다. 내 직업은 전인적(全人的)이라서 좋다. 문법, 구두법, 어법, 외국어와 문학에 관한 지식뿐만 아니라 삶의 갖가지 경험도 소용된다. 여행, 원예, 운송, 노래, 배관 수리, 가톨릭, 미국 중서부, 모차렐라, 뉴욕 지하철, 뉴저지 등등. 동시에 나의 경험은 더욱 풍부해진다. 

-21쪽, 「콤마퀸의 고백」



잡지 <뉴요커>의 속사정

원칙과 융통성 사이의 인간적인 균형감


우선 이것만은 확실히 해두자. 난 처음부터 콤마퀸(comma queen)은 아니었다. 내 생애 첫 직업은 열다섯 살이던 해 여름에 클리블랜드에 있는 공공 수영장에서 발 검사를 하는 일이었다. (…) 수영하려는 사람은 그 판때기에 한쪽 발을 번갈아 올려놓고 몸을 앞으로 숙여 자신의 손가락으로 발가락을 쭉 벌렸다. 그러면 발 검사자는 발에 무좀이 없는지 살폈다. 이 검사를 통과해야 수영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다른 도시에 이런 발 검사자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클리블랜드에선 이를 당연시했다. 추측건대 예전에 이리 호 주변에서 무좀이 유행했을 때 무좀 퇴치 운동을 벌이던 보건 담당 공무원이 그런 판때기를 급조하고 그걸로 발 검사를 수행할 사람을 고용했던 것 같다.

-9쪽, 「콤마퀸의 고백」


“콤마퀸”은 <뉴요커>에서 원고를 인쇄 전까지 최종으로 다듬고 책임지는 최고참 교열자를 일컫는 말이다. 어떤 편집자는 이 일을 “산문의 여신이 하는 일”로도 치켜세우는데, 문학이며 문법에 대한 지식 말고도 다양한 인생 경험과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맡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처음부터 콤마퀸이었던 건 아니다. 교열의 변방 클리블랜드에서 세계의 “문화수도”라 불리는 뉴욕, 그중에서도 가장 잘나가는 매체의 교열부에 발을 들이기까지는 공공 수영장 발 검사자며 의상 대여업체 직원, 우유 배달원, 치즈 공장 직원을 두루 거쳐야 했다. 『뉴욕은 교열 중』은 일찌감치 산전수전을 겪은 저자의 ‘웃픈’ 상경기를 들려주다가, 이내 체념과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 발 들인 평생직장 <뉴요커>에서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루 버크는 굽이 낮은 신발을 신고 청바지와 스웨터를 입고 장식이 달린 귀고리를 착용했다. 짧은 회색 머리에 새파란 눈동자를 지녔다. 그녀는 복도를 교도관처럼 순찰하듯 다녔고─그녀의 옆구리에 열쇠 꾸러미가 있는 듯했고─원고를 다루는 모든 신입 사원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인쇄물을 보석상이 감정하듯 살폈던 그녀의 책상 위엔 늘 확대경이 있었다. 바늘구멍이 송송 난 뚜껑이 달린 깡통 하나도 책상에 놓여 있었다. 피자 가게에서 볼 수 있는 고춧가루 용기만 한 크기였는데, 그녀는 이것을 갈색 종이로 감싸고 그 위에 콤마를 여러 개 그려놓고 “콤마셰이커(Comma Shaker)”라고 적었다. 이것은 <뉴요커>의 ‘정밀한’ 구두점 스타일에 대한 루의 비평이었다. 그녀는 우리가 콤마를 너무 많이 쓴다고 생각했다.

-63쪽, 「저 마녀!」


<뉴요커>의 전설적 질의교정자로 원칙주의자이자 공인된 천재로 불리는 엘리너 굴드. 그리고 그 옆 사무실에서 일하는 교열자로 자존심 강하고 용법보다는 작가의 목소리를 중시하며 비판할 때면 손수 만든 “콤마셰이커”를 흔들어 주의를 끄는 루 버크. 저자는 서로 반대 성향인 두 명의 선대 콤마퀸에게서 균형감을 배웠다. 구두점이며 문장부호며 문법이며 잘못 사용된 것은 바로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직업이지만 “교열자도 자신이 없어야 하는 순간을 알아야 할 때가 있다”라며 물러날 줄 아는 이른바 득도의 경지. <뉴요커>의 체제는 차갑고 숨 막힐 거란 기대와 달리, 저자는 기계적일 수 있는 교열 업무에 따르는 숱한 고민과 번복, 논의와 결단, 그러니까 인간미 넘치는 좌충우돌을 <뉴요커> 안팎의 일화로 유머러스하게 전한다. 편집부원으로 들어가 조판부와 취합부를 돌며 인사를 하던 ‘초짜’ 시절부터, 연필로 교열하는 연필 중독자로서 ‘딕슨 타이콘데로가’ 1번 연필에 관한 얘기로 한 챕터를 꽉 채울 정도가 된 지금까지, 열정적이고 익살맞은 교열자의 얘기가 빼곡하다.



개성과 애교와 ‘콤마’가 넘치는 책

문장부호, 문법, 글 쓰기의 기술


lady doctor와 lady dentist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도 있던데, 이는 직업에다 귀족적 취향과 생물학적 특성을 뒤섞은 괴상한 조어다. (…) male nurse와 male stripper, male prostitute는 여성의 요새에 남자들이 진출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교차 용어다. 일반적으로 영어에서 직명에 성별을 부기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대개 모욕적이다. 유모와 산파, 마담처럼 생물학적 구별을 전제하는 몇몇 직업이 아니라면 왜 성별을 밝혀야 할까? 사실 강고하고 유용한 여성 어미를 지닌 불멸의 영어 단어도 약간 있다. 그리스어에서 온 heroine(여걸)과 라틴어에서 온 dominatrix(가학적 성행위를 하는 여자). 한번 만나봐라, 성차별을 일삼는 녀석들아.

-79쪽, 「‘HEESH’ 문제」


『뉴욕은 교열 중』은 단어와 문법과 문장부호의 올바른 사용을, 그러니까 좋은 글쓰기와 섬세한 독서를 위해 반드시 숙달해야 할 기술을 <뉴요커>의 교열자답게 깐깐히 톺아보는 책이다. <뉴요커>이기에 영어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우리말, 우리의 언어 사용과 많은 공통분모를 지닌다. 문법에 관한 이야기는 기본이고, 글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효과적인 콤마와 원고료를 높이는 무분별한 콤마, 대시(줄표)와 하이픈의 경쟁과 역할론, 단어에 깃든 젠더 얘기, 욕할 줄 모르는 아버지 밑에서 순수했으나 대학에 들어가 “f*cking”과 “sh*t”의 왕나비로 부상한 얘기, 컴퓨터에 있는 자동 교정 기능에 대한 교열자로서의 회의까지,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문학작품을 가리지 않고 끌어와 영어, 나아가 언어를 꼬집고 어루만지고 음미한다. “언어 진단 전문의”로서 “난잡스러운 재미”와 함께 “천연스럽게” 언어를 돌아보면서 잘 읽고 잘 쓰는 일의 울타리를 낮춘다.


컴퓨터에 맞춤법 검사 기능이 있는데 왜 아직도 교열자가 필요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 내가 맞춤법 검사 기능을 해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건 오만일 테니까. 다만 자동 교정 기능은 없으면 좋겠다. 이것은 나를 서투른 바보로 취급한다. 비록 난 이 기능을 해제하는 방법을 모르고 문자메시지를 (나름대로 능숙하게) 보낼 때 엄지를 10대 청소년처럼 놀리지도 못하지만 왜 기계가 나를 대신해서 말하게 놔둬야 한단 말인가? 문자메시지로 Good Night를 독일어로 입력하니 Gute Nacht가 아니라 “Cute Nachos(귀여운 나초)”가 된다. (…) 어느 날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로 뭐 필요한 거 없느냐고 물었더니 “음식과 논문(dissertation)”은 충분하다는 답이 왔다. 난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포도주를 들고 갔고, 그 누구에게도 어떤 논문을 쓰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31쪽, 「맞춤법은 별종의 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