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 권장도서 선정

 

 

반 고흐의 마지막 안식처, 오베르주 라부
─여인숙에서 피어난 예술과 희로애락

 

  ‘광기의 예술가’ 혹은 ‘천재 예술가’로 일컬어지는 빈센트 반 고흐. 자신의 한쪽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으며 자살로 삶을 마친, 드라마틱한 인생사로 그는 우리에게 각인돼 있다. 여기에 <감자 먹는 사람들>로 대표되는 ‘서민’ 예술가의 이미지까지 더해졌다.
『고흐의 다락방』은 반 고흐의 마지막 거처를 중심으로 그의 삶과 예술을 재구성한다. 그는 평생 여인숙과 카페를 전전했으며, 그곳이 작품 탄생의 근거지였다. 늘 사람들이 드나드는 장소에서 그가 어떻게 먹고살았는가 하는 점에 이 책은 주목한다. 평생 의지한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를 비롯해 그림과 판화 작품, 엽서, 당시 사진 등의 자료를 근거로 그의 삶을 재구성했다. 당시의 모습과 음식을 그대로 재현한 오베르주 라부(반 고흐의 집)를 둘러싼 이야기와 프랑스 전통 요리 레시피가 더해져, 반 고흐와 동시대를 사는 경험을 선사한다.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많은 책들이 나왔지만, 그가 최후의 시간을 보낸 곳에서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보았으며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까지 상세히 다룬 책은 이 책이 유일하다. 특히 당시 유럽에서 카페를 겸한 여인숙이 예술가들에게 어떤 공간이었는지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고흐의 다락방』은 반 고흐의 삶과 예술 세계에 대한 인간적인 탐구를 통해, 일종의 ‘신화’에 젖어 있던 이들에게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공공장소, 고흐의 삶터이자 일터

─그림과 편지로 보는 ‘카페생활자’의 나날

 

자기 것이라 할 집도 가족도 없는 예술가에게 카페나 여인숙은 잠을 청하고 끼니를 해결하고 술을 마시며 꿈을 꾸고 또 술을 마시는 곳이다. 그리고 예술 하는 친구들을 만나 예술과 인생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처럼 카페나 여인숙은 개인적인 생활의 모습을 갖춘 공공장소다.
―57쪽에서

 

“나는 항상 어디론가 가야 할 데가 있는 여행자 같아.”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했던 말이다. 열한 살 이후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닌 반 고흐는 37년 동안 4개의 나라를 거쳤고 머무른 장소는 38군데였다.
당시 유럽에는 여인숙이 카페를 겸한 경우가 많았다. 개인의 삶이 녹아 있는 공공장소라 할 그곳들은 실제로 반 고흐의 작품과 편지에 무수히 나타나 있다. 삶의 터전이자 작업실인 곳에서 만난 사람들, 거기서 먹고 자는 일상이 그의 사고와 작품을 형성했다.
이 책의 1부 「카페에서 피어난 예술」은 미술사학자이자 반고흐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를 지낸 프레드 리먼이 쓴 것으로, 반 고흐의 당시 행적을 따라간다. 파리에서 동생 테오와 함께 지낸 시절에 그린 <카페 테라스(갱게트)>, 화가 툴루즈로트렉과 함께 단골로 드나들던 음식점에서 그린 <바타유 식당의 창문>, 화가 폴 시냐크‧에밀 베르나르와 작업하던 아니에르에서 그린 <아니에르의 시렌 레스토랑>, 반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로 검은색을 쓰지 않고 밤하늘을 표현해낸 <밤의 카페 테라스(포룸 광장)> 등의 작품에서 그의 생활상은 물론 색채와 화법, 구도 등의 흐름도 살펴볼 수 있다. 예컨대 아를에서 묵었던 심야 카페에서 주인에게 돈을 못 낸 대가로 사흘 밤 동안 그려낸 <밤의 카페>에선 짙은 색들의 강렬한 대비로 “사람들이 자신을 망치거나 실성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곳으로서의 카페”를 표현하려 했다. 심야에 부랑자들이 드나들던 이곳에서 그는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듯 이렇게 썼다. “나는 미래의 화가가 나처럼 작은 카페에 기거하며 불량한 치아 상태로 작업에 매진하고 사창가에 드나드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그는 고갱과 어울려 “창녀들을 연구하기 위해” 사창굴을 드나들었고, 그곳에서 본 인물들이 <사창굴>에 표현되었다. 반 고흐 스스로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은 초상화”라고 말했는데, 그가 알고 지낸 카페 주인과 단골손님의 얼굴은 초상화를 통해 후세에 널리 알려졌다. <탕부랭 카페의 여인> <아를의 여인 마담 지누> <남자의 초상(조제프미셸 지누)> <밀리에 소위의 초상> <우체부 룰랭의 초상> <아들린 라부의 초상> 등이 그것이다.
한편, <감자 먹는 사람들> 등에서 알 수 있듯 노동자층에 경의를 표한 반 고흐는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라”라는 성경 구절을 편지에 종종 인용했다. 스스로 빵을 벌어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면서도, 죽을힘을 다해 그림을 그리기에 빵 먹을 자격이 있다는 말로 자신을 변호했다. 그는 실제 삶에서 중요한 것은 그림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궁핍에서 미덕을 본 그의 가치관이 작품으로 승화되어, 음식을 소재로 한 정물화들로 표현되었다.
그 정물화들은 어떤 면에서 그를 지탱한 사물들의 목록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양파가 있는 정물>(103쪽)에 보이는 건강개론서는 그가 참고한 지침서였으며, 담배 파이프는 그가 죽기 직전에도 피웠던 것으로 그림자와도 같았던 물건이다. 이 그림에는 테오가 보낸 편지와 함께 압생트 병이 보이는데, 압생트는 반 고흐가 중독되다시피 한 술이었다. 한때 커피에도 빠져 지냈으며, 적당한 사치를 누릴 수 없던 그는 이러한 것들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의사들의 경고에 갈등하면서도 말이다.

 
 

100년 전 식탁을 재현하다

─화가를 위로한 프랑스 음식 레시피


여기는 내가 생각한 대로야. 어디를 가든 보랏빛을 띠고 있구나. 오베르는 단연 아름다운 곳이다.
―1890년 5월,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약 35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 오베르쉬르우아즈(줄여서 ‘오베르’)는 반 고흐 이전에도 여러 예술가들이 머물렀던 예술가촌이었다. 그 뒤 반 고흐가 그곳의 여인숙이자 카페인 오베르주 라부에 70일간 머물다 최후를 맞았고 훗날 명성이 높아지면서 오베르는 반 고흐의 마을로 알려졌다. 오베르주 라부는 현재 ‘반 고흐의 집’이란 이름으로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명소다.
오베르는 파리와 거리상 가까운 데다 아름답고 때 묻지 않은 자연 때문에 19세기 중엽 화가들이 찾았고 일반인들도 소풍과 휴가지로 애용하는 마을이었다. 호텔과 여인숙이 대여섯 군데나 들어서 있었고, 반 고흐는 숙식비가 저렴한 오베르주 라부를 선택했다.
반 고흐에게 오베르에서의 나날은 발견의 연속이었다. 오래된 농가들과 교회, 강과 밭, 농사 짓는 여인들의 그을린 얼굴 등은 모두 좋은 그림 소재가 되었다. 그는 전원이라는 환경이 치유의 힘을 지녔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테오 부부나 다른 집안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보면 그가 라부 여인숙에서의 생활 조건에 만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곳에서 음식점들에 불평을 쏟아내던 그가 라부 여인숙의 음식에 대해서는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았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반 고흐는 규칙적인 식습관을 들이고 신선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섭취했으며 포도주도 남쪽 지방에 있었을 때보다 질이 좋은 것을 마셨다.

 

갈증을 풀고, 허기를 채우고, 겨울이면 추위를 피해 밝은 곳으로 들어가 난롯가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라부 여인숙 같은 영업소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했다. (…) 마을 중심가라는 편리한 입지 덕에 라부 여인숙은 당일치기 여행자들이나 화가들이 마을에 도착해 소풍이나 그림을 그리려 들판으로 나가기 전 잠깐 들러 한잔하기에 맞춤한 곳이었다.
―152쪽에서

 

2부 「화가를 위로한 음식」은 요리역사학자 알렉산드라 리프가 썼다. 그는 19세기 당시 오베르쉬르우아즈의 농경문화와 여인숙(카페)의 사회적 기능, 식생활 등을 소개하면서, 거기서 반 고흐가 어떤 영향을 받고 살았는지 살펴본다. 그때 그곳 사람들과 반 고흐가 즐긴 프랑스 전통 요리를 100년이 지난 지금도 맛볼 수 있다. 2부 사이사이에 세 묶음으로 배치된 레시피가 그것이다. 각각 대중요리‧토속요리‧중산층 요리로, 총 44개의 메뉴가 상세히 소개된다. 애피타이저에서 디저트까지, 프랑스 음식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직접 만들어볼 수도 있다.
오베르쉬르우아즈에 오기 전, 빈센트 반 고흐는 육체적‧정신적인 위기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가 간절히 바랐던 평안과 자유가 오베르에 있었으며, 비록 70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것을 누릴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 『고흐의 다락방』은 우리가 마치 그곳에 가 있는 듯한 생생한 경험을 제공한다. 반 고흐가 살던 시공간을 호흡하며, 그의 나날을 함께하도록 이끈다. 신화가 아닌 우리 곁의 ‘인간’으로 그를 불러온다.

 

반 고흐는 몹시도 갈구하던 평안을 찾아 오베르로 갔다. 일시적이었으나 그는 그것을 찾았다. 반 고흐가 추구하고 경험한 평안을 당신도 경험할 수 있다.
―229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