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문학의 정전, 웨스트 소설 국내 첫 출간


웨스트는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등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들과 동시대를 호흡한 천재 작가이다. 미국 대공황기의 암울한 사회상을 통해 인간과 사회에 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은 영미문학에서는 이미 하나의 고전으로 인정되고 있다. 1940년 서른일곱의 나이로 캘리포니아 주 엘센트로 근처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기까지 단 네 편의 소설을 남겼을 뿐이지만, 그런 까닭에 그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천재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이러한 문학사적 위치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아직 출간되지 않았던 웨스트의 소설 중에서 대표작 두 편이 국내에 소개된다.


『위대한 개츠비』『호밀밭의 파수꾼』등 미국 고전에 대한 한국 도서계의 관심이 높은 시점에 출간되는 웨스트의 소설은, 소설 읽기의 즐거움과 소설의 사회적 효용에 대한 자각을 동시에 던져줄 것이다. <마음산책> 편집부와 옮긴이 이종인 씨는 영문학 관련 논문에서 자주 언급되는 웨스트의 소설이 정작 한국에 번역되어 있지 않음을 깨닫고 첫 소개의 사명감을 갖고 출간 작업에 임했다.



1. 최초의 반(反) 할리우드 소설, 『메뚜기의 하루Day of the Locust』(1939년작)


1)『메뚜기의 하루』는 랜덤하우스 산하의 모던 라이브러리 편집위원회가 선정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미국 소설 100선’에서 73위로 선정된 작품이다. 비슷한 수준에 오른 소설로, 조셉 콘래드의『어둠의 한가운데』가 67위, 헤밍웨이의『무기여 잘 있거라』가 74위, 솔 벨로의『오기 마치의 모험』이 81위인 것을 보면, 이 작품이 이미 20세기 영미문학에서 정전의 반열에 올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의 탁월함을 제일 먼저 알아본,『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 소설을 읽고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메뚜기의 하루』는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진 인상적인 장면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나는 영화 시사회장 앞에 메뚜기 떼같이 몰려든 병적인 군중들의 묘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여러 작중 인물들, 야망에 불타는 여배우, 할리우드 주변을 떠도는 삼류 인생들의 저 기이한 풍모, 기괴할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진 배경 등에 대해서도 강한 인상을 받았다.

    ―스콧 피츠제럴드  미국의 소설가

 

2)『메뚜기의 하루』는 할리우드를 비판적으로 조명한 첫 번째 반(反) 할리우드 소설이며 할리우드 주변의 인생을 다룬 소설로는 이 작품처럼 생생하게 그 생활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가는 ‘불타는 욕망’을 주제로 할리우드 근처의 부나비 같은 인생을 거대한 벽화로 만들어 보여준다는 야망을 갖고 있다. 그리하여 할리우드로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들의 서로 다른 욕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죽기 위해 할리우드로 오는’ 사람, 지루함을 죽이기 위해 오는 사람, 그저 존재하기 위해 할리우드로 오는 사람 등 할리우드 주위를 ‘메뚜기 떼’처럼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군상들이 빚어내는 서로 다른 욕망의 형태를 보여준다. 이들이 빚어내는 욕망은 서로 다른 형태를 띠지만, ‘메뚜기의 하루’처럼 부질없이 타올랐다가 사라지는 삶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그리고 토드, 호머, 페이 그리너, 이 세 사람이 보여주는 관계를 통해 사랑과 폭력이라는 문제에도 천착하고 있다. 자신의 사랑을 거부하는 페이에게 끊임없이 강간 충동을 느끼는 토드와, 끊임없이 학대받으면서도 페이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호머, 그리고 ‘자기충족성’이라는 특성으로 근본적으로는 자연을 상징하는 페이의 폭력성을 통해, 사랑과 폭력에 대한 작가 나름의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의 사랑과 연민이 어떻게 폭력으로 전이되는지, 그리고 개인의 폭력이 어떻게 군중의 폭력으로 전이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그는 권태와 무감각 때문에 폭력이 터져나온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병든 현대 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2. 내용


토드 해케트는 예일 대학 미대 출신으로 내셔널 영화사의 무대와 의상 담당 디자이너로 채용되어 할리우드에 왔다. 그러나 그는 ‘불타는 로스앤젤레스’라는 대작을 그릴 꿈을 꾸며 살아간다. 그는 피니언 캐니언에 있는 보잘것 없는 다세대 주택에 살고 있는데, 아래층에 살고 있는 페이 그리너에게 첫눈에 반한다. 페이 그리너는 가난한 광대, 해리 그리너의 딸로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허영에 젖어 살아간다. 토드에게는 경쟁자가 두 명 더 있는데, 자폐적 성향을 갖고 있는 호머와 카우보이 출신 건달 얼이 그들이다. 페이는 아버지가 죽은 뒤, 아버지와의 장삿길에서 만났던 호머와 계약을 맺고 그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도움을 받는다. 처음과는 달리 페이는 호머에게 점점 더 가학적으로 대한다. 페이는 호머에게 부탁해 얼과 그의 패거리 부랑자들을 차고에 끌어들인다. 어느 날 투계 노름판을 벌인 토드와 얼 일행은 호머의 집에서 난잡한 파티를 벌이다 싸움을 벌이게 되고, 다음 날 페이가 사라진다. 호머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떠나려 하고, 그의 정신 상태가 걱정된 토드는 그를 정신병원에 데려가려고 한다. 이 와중에 그들은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는 배우를 보기 위해 몰려든 군중들에 휩쓸린다. 그곳에서 자신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는 이웃집 아이를 폭행하던 호머는 성난 군중들에 묻혀 사라지고, 토드는 군중들 사이로 휩쓸려 다니다 가까스로 구조되고, 구급차에 실려 친구 에스티의 집으로 향한다.

 


3. 추천사


너새네이얼 웨스트는 경제공황으로 어렵던 1930년대에 꿈을 찾아 할리우드로 간 작가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레슬리 피들러의 지적대로 할리우드는 ‘인조의 낙원’이었을 뿐, 지옥을 피해 찾아간 작가에게 구원의 꿈과 희망을 주는 곳은 아니었다. 37세에 교통사고로 요절할 때까지 할리우드에서 살았던 웨스트에게 할리우드는 미국 사회의 축소판이자 소우주였다.


최초의 반(反)할리우드 소설로 불리는『메뚜기의 하루』에서 웨스트는 꿈을 찾아 할리우드에 모여든 삼류 배우들의 실패와 좌절을 통해, 꿈의 공장이자 쇼 비즈니스인 할리우드의 악몽을 고발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거대한 대중과 청중을 의식해야만 하는 예술가의 딜레마와 청중의 횡포를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보여주고 있다. 다른 작가들이 경제공황과 스페인 내란과 좌파운동을 다루고 있을 때, 웨스트는 꿈과 현실의 세계를 오가며 할리우드의 본질을 탐색했던 특이한 작가였다.


―김성곤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