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디자인이 좋은 책' 우수상

 

 

미국 평단의 ‘불을 뿜는 용’, 데이브 히키
예술의 목적을 둘러싼 논쟁에 불을 붙이다



  미국의 문화평론가이자 미술비평가 데이브 히키. 미술평단의 ‘이단아’로 불리는 그는 수잔 손택, 아서 단토, 로잘린드 크라우스, 제리 살츠 등과 함께 미술계 안팎으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평가로 꼽힌다. 해외에서는 언론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졌으나 한국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생소한 그가 『보이지 않는 용』으로 국내에 첫선을 보인다.
  데이브 히키는 1993년 『보이지 않는 용』 초판 출간 직후 미국 학계에서 거센 반발을 샀다. 책의 요지는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린 것이며, 미술작품은 보는 즐거움을 줘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작품의 겉모습을 그 안에 담긴 ‘의미’보다 중요시하는 것으로 비친 그의 주장에, 보수적인 학계는 발끈했다. 당시 한 대학에서 히키가 강연하던 도중 그 자리에 참석한 교수들이 우르르 일어나 나가버렸는가 하면, 강연료 지급이 보류됐고 히키는 고소 위협까지 받았다. 결국 그 초판집은 절판됐으며 히키는 16년이 지난 2009년, 개정증보판으로 다시금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책은 그 개정증보판을 번역한 것이다.
  ‘문학적‧철학적 비평’이 특징인 비평가 히키는 이 책에서 (미술의) ‘아름다움(美)’이 역사적으로 어떤 위치를 차지해왔는지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세상을 바꾸는 수단이 된다고 역설한다. 그런 점에서 예술의 세계에 갇혀 있던 아름다움의 개념과 민주주의를 연결한다.
  초판이 출간된 1990년대 초 미국은 보수와 진보진영 간 ‘문화전쟁’이 한창이었다. 당시 공화당의 제시 헬름스 상원의원이 사진작가 메이플소프의 외설적인 작품 전시를 맹비난한 뒤 미국 국립예술기금(NEA)의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히키는 메이플소프의 열렬한 옹호자였지만 헬름스의 행동 또한 칭찬했다. 작가에게 포르노 사진을 제작할 자유가 있듯이, 그것을 반대할 자유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란 이름 아래 예술을 박제화하는 비평가들의 행동이 비민주적이라고 히키는 주장한다.
  그는 미술작품을 비롯한 어떤 아름다움도 ‘배워야’ 아는 것이 아니라 ‘보면’ 안다고 말한다. 따라서 미술관이나 정부, 학계, 출판계에서 아름다움을 재단하고 의미를 주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술을 ‘읽어주는’ 책이 범람하는 이때, 『보이지 않는 용』은 우리에게 신선한 토론의 장을 열어줄 것이다.


 

미술의 가치는 보는 사람이 결정한다
누가 예술의 ‘유익함’을 말하는가


  저자는 “사람들이 감탄하는 이미지라면 그것은 거론할 가치가 있다”라고 말한다. 미술관이나 공공기관은 흔히 작품의 겉모습에 치중한 ‘팔리는’ 미술을 평가절하하고, 상업성 광고는 미술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히키에 따르면 우리의 시각을 재구성할 수 있는 이미지라면 그 자체로 엄연한 미술이다. 이것은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관료와 감시와 독재자의 처벌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를 두고 벤담의 ‘판옵티콘’ 논리를 가져온 것에 적용해볼 수 있다.

 

미술상들은 즐거움과 흥분을 약속하는 이미지들을 중요시한다. 이 약속을 지키는 이미지는 조정의 신하가 되지만, 약속을 어기는 이미지는 왕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  미술상은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든’ 개의치 않는다는 점에서 푸코의 왕과 같다. (…) 기관의 큐레이터들도 벤담의 자비로운 감시자처럼 공적인 의무를 진다. 그들은 세심하게 작품을 보고, 미술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이 의미가 공적인 맥락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진심으로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결국 거의 필연적으로 작품의 겉모습을 불신해야만 한다.

—35쪽에서

 

  히키는,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면 ‘영혼’을 감시하는 관료보다는 ‘겉모습’을 통제하는 독재자 쪽을 선택하겠다는 입장에 가깝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우리는 전자, 즉 작품의 내용과 의미를 중시하고 후자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16세기 르네상스 회화는 표현 기법에서 눈부신 혁신을 이루었는데, 그 이미지들에 힘을 부여한 것은 교회나 정부가 아닌 구경꾼(관람자)이었다. 이미지에 의미를 부여하는 성직자와 정부 관료의 힘이 그 시대에 처음으로 쇠퇴했으며, 이미지와 구경꾼 사이의 직접적인 만남은 기관의 특성을 바꿀 잠재력을 띠고 정치에 관여한다. 그러고는 화가들이 이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로 4세기가 넘도록, 이미지는 이데올로기나 명성 등 무엇을 ‘주장’하게 된다.
  저자 히키에 따르면, 이처럼 아름다움의 임무는 애호가들을 참여시켜 발언권을 주고 그들의 힘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오늘날 이미지와 구경꾼 사이에 교회나 국가는 없지만 대신 기관이나 비평가가 있다. 거기서 아름다움은 밀려났고 우리는 작품의 (유익한) ‘의미’를 가르치는 교과서 속 내용을 암기한다.
  논란이 되었던 메이플소프의 동성애 묘사 사진전은 권력자, 즉 정치계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진 사건이었다. 히키는 그 이미지들이 위협적이었던 건 주변성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알리는 전시’였기 때문이며, 그 이미지들이 직접 구경꾼들을 참여시켜 발언권을 주었다고 본다. 그것이 바로 아름다움의 언어이며 그것이 지닌 민주적 호소력이라는 것이다. 메이플소프의 이미지는 극우 정치인에서 일반 관람자까지, 무엇이 유익하고 무엇이 아름다운지를 둘러싼 논의에 참여하도록 이끌었고, 그런 점에서 변화의 수단으로서 이미지의 힘을 보여주었다고 히키는 평가한다.


 

아름다움과 민주주의
미술은 사회를 바꾸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20세기에 등장한 모더니즘은 (미술)작품과 작가(미술가), 관람자(구경꾼)라는 3자 관계에서 작품의 위상을 급격히 높였다. 이는 관람자에게 큰 자격이 부여되었던 르네상스 시기의 관계와 대비된다. 현대 미술비평에서 구경꾼의 역할은 작품의 위엄과 권위 앞에 눌려 있으며, 작품은 우리가 평생 이해하려 애써야 하는 ‘가부장적’ 역할을 부여받는다.
  작품에 이러한 권위를 부여하는 관료 조직을, 히키는 ‘치료기관’이라고 부른다. 미술관, 대학, 재단, 비영리 단체 등을 말하는데 이것은 20세기 특유의 문화유물이라는 것. 역사적으로는 뉴욕 현대미술관 초대 관장인 알프레드 바와 나치 문화선전부 장관 요제프 괴벨스가 대표적인데, 오늘날까지 치료기관은 다양한 방법으로 미술작품의 ‘유익함’을 내세워 대중을 계도하고 있다고 히키는 말한다. 치료기관의 개입으로 우리의 발언권은 박탈되며, ‘아름다움’을 순수하게 느끼는 즐거움은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히키는 ‘아름다움’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지는 않는다. 아름다움은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저녁노을에서 농구 선수의 점프 슛, 미술작품에 이르기까지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대상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감탄사에는 우리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소통하고 공유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또래끼리 연예인을 우상화하고 모여들듯,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것을 공유한다. 나아가 아름다운 것들은 거기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어떤 이들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것이 히키가 말하는 아름다움의 언어, 곧 민주주의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동일한 반응을 보이는 지지 집단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찾아낸다.
이렇듯 우리가 목청을 울려 말하는 “아름답다!”에는 절박함이 있다. (…) 아름다운 사물은 그런 방식으로 사회를 재구성하되 어떤 경우에는 급진적인 결과를 낳는다. (…) 우리의 열의를 단순히 광팬들의 영역으로 치부해버리면 그건 핵심을 놓치는 일이다. 왜냐하면 자유 사회에서 어떤 시민단체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127~128쪽에서

 

  그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미술이 대표적인데, 미술에는 종교 교리에서부터 파격적인 성행위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험하고 전복적이다. 오늘날 미술작품을 볼 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즐기기보다 ‘더 훌륭한 이유들’, 즉 그동안 읽고 배운 의미와 가치에 기댄다. 그러나 히키는 단언한다. “아름다움이 먼저라는 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 아름다운 작품은 미덕 없이도 살아남는다.”
  이 책에서 데이브 히키는 문학적인 비유와 철학적 사유로 논지를 펼쳐나간다. 앤디 워홀과 라파엘, 카라바조, 메이플소프, 존 러스킨, 들뢰즈, 푸코 등을 인용하며 소위 ‘아카데미’ 미술계를 공략한다. 점잖은 비평이라기보다는 행동을 촉구하는 선언에 가까운 이 책 『보이지 않는 용』은, 예술과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우리의 기존 관념을 재점검할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