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어떻게든 된다
배우 가자마 도루가 할머니에게 배운 인생철학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중후한 이미지의 잘생긴 중년 배우가 툭툭 던지는 말에 진행자와 출연진이 연신 웃음을 터뜨린다. 집에 욕조가 없어 야외 세탁기에서 씻었고 배고픔을 달래려고 공원의 풀을 뜯어 먹었으며 하늘만 보다가 시력이 3.0이 되었다는, 심지어 사마귀 다리와 돌멩이의 맛을 기억한다는 그는 이른바 ‘가난 대표’ ‘가난 레전드’ ‘가난의 왕’으로 화제가 된다. 가난이 마냥 자랑이 될 수 없는 시대, 가난한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왜 웃음이 났을까. 꾸며낼 여지없이 ‘진짜로 가난하니까 당당하게 살자’라고 생각했던, 밝고 여유로운 그의 태도에 사람들은 감탄한 것이다. 억지로 긍정하지 않고 쉽게 포기하지 않으며 물 흐르는 대로 살아온 그. 고비도 일상의 한 부분으로 담담히 받아들이는 의연하고 뒤끝 없는 배우 가자마 도루의 이야기를 한 권에 담은 산문집이 마음산책에서 출간되었다.
가자마 도루는 누구일까? 시대마다 소녀들의 ‘오빠’로 자리매김한 스타들이 있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에 기무라 타쿠야가 있다면 1980년대에는 <맨즈논노> 창간 당시 대표 모델 가자마 도루와 아베 히로시가 있다. ‘꽃미남’의 대명사였지만 지금은 모두 배우로서 다방면으로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이며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가자마 도루의 이름을 <짱구는 못 말려>에서 철수의 본명으로 기억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현재도 연기파 배우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가자마 도루의 평탄치 않은 인생은 다섯 살 무렵 시작된다. 그의 인생 이야기를 영화로 표현한다면 왠지 첫 장면은 드넓은 강물로 시작하고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막이 내릴 것 같다. 어머니가 아버지 아닌 다른 남자와 만나는 모습을 보면서도 등 돌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다섯 살 꼬마, 조금만 더 놀자며 친구를 붙잡아도 다들 저녁 먹으러 떠난 뒤 홀로 남겨졌던 아이, 학교 급식을 먹을 수 없으니 굶기만 해야 하는 여름방학을 두려워하던 소년, 할머니가 여자 친구와 데이트하라고 준 동전 한 닢을 들고 어디도 가지 못한 중학생. 많은 시간을 강가에서 보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하고 가족이 해체되며 할머니 할아버지의 연금만으로 버텨야 하는 극빈 생활이 시작된다. 하지만 정이 많아 부족한 형편에도 베풀기를 좋아했던 할머니와 남자는 말보다 행동이라고 가르쳤던 자상한 할아버지에게서 진짜 행복하게 살아가는 자신만의 비법을 깨우친다.
불평등, 빈곤사회, 양극화 현상, 연금 붕괴, 불황, 청년 실업 등 어두운 사회적 키워드가 만연하는 때이지만 『엄살은 그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아’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던진다. 가난은 괴롭지만 불행이 아니라는 것, 행복의 방법은 꼭 하나뿐이 아니라는 것, 그러나 저러나 인생은 어떻게든 된다는 가자마 도루의 ‘쿨한’ 응원은 퍽 위안이 된다.


인생은 서바이벌이다! 나의 서바이벌도 아직 한참 남았다.
나 같은 사람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고생은 결코 헛수고가 아니며 누구의 인생이든 결국 오십보백보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때마침 운 좋은 시기를 만났을 뿐이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우연히 운 없는 시기를 만났을 뿐이다.

이 책은 나의 성장 기록일 뿐 아니라 인생은 어떻게든 된다는 할머니의 가르침을 담은 기록이다.
돈은 있는 편이 좋고 부모도 있는 편이 좋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살자는 응원의 글이기도 하다.
―「맺음말」에서



눈물도 웃음도 나지만 무엇보다 왠지 힘이 나는 책
할머니의 극강 인생 처방전


그가 깨친 삶의 지혜란 대개 할머니가 물려준 것들이다. “남자는 우는 거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자라 하도 울지를 않으니 주위 어른들이 “너는 꼭 무사 같구나”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울어도 아무리 불평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그는 알았던 것이다. 그럴 바에야 불만을 쏟아낼 에너지를 다른 일에 쏟아내는 것이 건설적이라는 것.
특히나 사람을 좋아했던 할머니는 어려운 형편에도 모르는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한다든가 정에 이끌려 딱한 장사꾼의 부탁을 들어준다든가 무려 이웃의 어린아이를 기약 없이 맡아 길러주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걱정하는 손자에게 했던 말.


“내일 일은 내일 일이야. 괜찮아, 괜찮아. 어떻게든 될 테니 걱정하지 마라!”
할머니는 호탕하게 웃었다.
나는 할머니의 웃는 얼굴을 신기한 구경이라도 하듯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말 어떻게든 해결됐다.
―77쪽


‘인생만렙’ 할머니의 극강 ‘맨주먹 정신’은 꾸준히 이어진다.


“신경 쓸 것 없어.”
“별일 아니야.”
“다 되게 되어 있어.”
“이것도 인연이지.”
“물 흐르듯이 사는 거야.”
“힘든 건 피차일반이잖니?”
“가난한 사람은 나쁜 유혹에 빠지기 쉬우니까 그걸 잘 견뎌내야 해.”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내며 할머니로부터 터득한 지혜는 이제 가자마 도루의 인생을 가로지르는 중요한 지침이 된다. 배고픈 처지의 후배가 있으면 원하는 만큼 푸짐하게 먹이고 싶다는 그가 “더 먹어!”라고 하는 말에는 지금만 잘 극복하면 되니까 기죽지 말라는 응원이 담겨 있다. 생일에는 내가 좋아하고 나를 아끼는 사람을 초대해 음식과 마음을 함께 나눈다. 돈에 지배당하면 결국 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또한 할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인생에서 ‘언젠가’ ‘조만간’이라는 단어를 지운다. 마음먹은 일은 행동으로 옮기고 한번 한 약속은 지키려고 노력한다. ‘후회 없이 사는 방법’을 배운 셈이다.



행복은 언제나 궁리하는 것
포복절도 고군분투 섭생기


이 책에는 다섯 살 때 부모님이 집을 나가고 힘들었던 경제 사정, 치매에 걸렸던 할아버지의 간호, 학창 시절, 연애, 그 뒤 자립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자마 도루의 고군분투 나날이 포복절도의 웃음으로 뜨거운 눈물로 펼쳐진다. 행복을 궁리해가는 성실함으로 치자면 그는 ‘프로’다.
『엄살은 그만』은 ‘가난했던 소년의 성공담’이기도 하지만, ‘콤플렉스를 승화’한 이야기이자 ‘돈에 휘둘리지 않는 삶의 방식’의 지향이기도 하며, ‘인생은 어떻게든 된다’라는 삶의 교훈이기도 하다.
너나 할 것 없이 고되고 힘든 일상에서 걱정은 많아지고 잠은 참 안 오는 날 가자마 도루의 이 이야기를 읽고 죄책감 없는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힘든 건 피차일반이고 인생은 어떻게든 된다니까 말이다.


산다는 일은, 내 이상과 다른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나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여정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 고통을 모를 때는 용기가 쉽지만 고통을 알고 나면 두려움은 커지고 고통에 대한 상상력도 풍부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 들면서 참 걱정은 많아지고 잠은 안 온다. 그럴 때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며 위안을 받으면 안 되는데 가자마 도루 씨의 이야기를 읽고 얻은 위안에 대해서는 죄책감이 안 든다. 그의 ‘맨주먹 정신’ 때문이다. 기억해야지, 인생은 어떻게든 된단다.     
-이경미 영화감독의 추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