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의 사회적 기원을 밝히는 여정
‘동아시아 100권의 인문도서’ 국내 초역

 

2005년 가을, 한국, 중국, 홍콩, 대만, 일본의 출판인들이 모여 동아시아 독서 공동체를 이루고 지속적이고 진지한 문화 교류를 촉진하자는 ‘동아시아출판인회의’가 처음으로 열렸다. 일과성 행사를 벗어나 출판문화, 나아가 지성의 저변을 굳게 다지려는 이후의 모임들에서 시장주의와 효율성에 내몰린 인문학의 위기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고, 그 결과 공동의 노력으로 동아시아 지성의 축적을 보전하고 나누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동아시아 100권의 인문도서’는 이렇게 생겨났다. 최근 50년간 출간된 동아시아 각 나라의 책 중에서 자국 인문학의 정수라 할 ‘현대의 고전’들을 추렸고, 그렇게 한․중․일 각 26권과 대만 16권, 홍콩 6권, 모두 100권의 책으로 된 목록이 완성되었다. 1982년 일본에서 첫 출간돼 적잖은 반향을 일으킨 『분열병과 인류』 역시 이 중 하나다. 정신과 의사로서 오랫동안 일본 정신의학계의 일인자로 자리했으며 탁월한 문장가로 존경받는 노학자 나카이 히사오(中井久夫)의 대표작으로, 국내에는 초역이다.

흔히 정신병은 ‘비정상’ 또는 ‘비이성’의 영역에 속하는 것, 무언가 눅눅하고 불온한 것으로서 배제당하지만, 실은 정도의 차이일 뿐 인간은 모두 정신병적 기질을 가지고 있다. 복권에 당첨되길 바라는 흔한 공상도, 일상의 규칙화한 습관도 모두 정신의학의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역사에서 보건대 이러한 정신병적 기질은 단순히 개개인에 잠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차이와 차별, 배제와 억압의 근거가 되어왔으며, 이것이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꼭 발전이었을까?
『분열병과 인류』는 정신병 중에서도 ‘분열’과 ‘강박’을 통해 인류의 발전사를 돌아보는 책이다. 소유 개념도 없이 수렵과 채집으로 연명하던 ‘비강박적’ 시대의 인류가 강박적인 농경・목축 인류에 떠밀려 어떻게 정신병적 소수자로 치달았는지,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강박은 왜 오늘날의 인류사를 이룩하는 데 미덕이 돼왔는지, 그리고 이렇게 변천해온 역사에는 어떤 이점과 부작용이 따랐는지 저자는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문화인류학적 견지에서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간다.

 

내 의문은 처음엔 소박한 것이었다. 왜 일본에서만 ‘집착기질’이 우울병의 발병 전 성격으로 돼 있고, 독일에서만 그것과 유사한 ‘멜랑콜리형’이 우울병의 발병 전 성격으로 돼 있는 걸까. (…) 일본과 독일의 평가 차이도 주목했다. (…) ‘멜랑콜리형’이 ‘매우 신통찮은 사람’인 데 비해 ‘집착기질’은 시모다가 “모범 군인, 모범 사원, 모범 청년”이라고까지 칭찬했다.
-286쪽, 「저자 후기」

 

독일과 일본에서 유독 집착기질(멜랑콜리형)이 우울병의 전조(前兆)인 이유는 무엇이며 집착기질에 대한 독일과 일본의 평가는 왜 다른가, 라는 물음에서 이 책은 시작되었다. 그러던 것이 한편으로는 우울병이 없던 시기의 인류에 관한 고찰로 나아갔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의학의 배경사를 개괄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해서 『분열병과 인류』는 농경・목축민에게 밀린 수렵・채집민의 특성이 병으로 발전해가는 이야기를 다룬 「분열병과 인류」, 강박증의 전 단계이면서 일본 사회의 동력으로 작용해온 ‘집착기질’의 연원을 살피는 「집착기질의 역사적 배경」, 그리고 정신의학사의 배경과 맥락을 한눈에 파악하는 「서구 정신의학 배경사」의 총 세 장으로 구성된, 정신의학 전반에 관한 책으로 거듭났다. 『분열병과 인류』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데 유용했던 특성들이 시대가 바뀌어 정신병질로 재인식되는 양상을 치밀하게 관찰하며, 중세를 휩쓴 마녀사냥의 배경과 근대 정신병원의 태동 등 흥미로운 역사 소재들을 정신의학사의 맥락에서 진지하게 구성해간다.

 

인류의 역사는 정신병의 발전사
초기 인류에게 정신병은 없었다

 

나는 한편으로 분열병을 앓게 될 가능성은 전 인류가 다 갖고 있다고 가정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 심각한 실조(失調) 형태가 다른 병보다도 분열병으로 발전하기 쉬운 ‘분열병 친화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20쪽, 「선취적 구상」
 
저자는 분열병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로 간주한다. 다만 분열병과 더 가까운 사람, 덜 가까운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중에서 저자는 분열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 이른바 ‘분열병 친화자’를 통해 분열병의 사회적 기원을 살핀다. 이를 위해 주목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수렵・채집민으로 살아가는 부시맨이다.
인류가 아직 수렵・채집민이던 무렵에는 소유도 권력관계도, 체계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강박도 없었다. 다만 시시각각 닥쳐오는 환경의 변화와 위험 속에서 순발력과 협력이 요구되었다. 야생에서 살아가기 위해 수렵・채집민은 작은 낌새도 예민하게 포착해 즉각 대처하는 능력, 즉 ‘미분회로적 인지 능력’을 갖추었는데, 이것은 자연의 피지배자로서 정주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미덕 같은 것이었다.

 

채집자였을 가장 오랜 인류도 오늘날의 채집자들과 마찬가지로 징후적인 것에 과민한 쪽이 유리했으리라는 점은 오늘날 어린이들의 ‘숨바꼭질’의 경우와 다름없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와 같은 가장 오래된 채집자들은 사냥하기보다 그 자신이 다른 동물들에게 사냥당할 수 있는 존재였을 것이다. 오늘날의 부시맨도 사자에 대해서는 사냥을 할 처지가 아니다. 오늘날 그들은 주로 백인이나 반투족으로부터 사냥을 당하는 존재이며, 그들이 얼마나 몸을 잘 숨기는지는 문화인류학자들의 글에 잘 드러나 있다. 도망칠 때 미분(회로)적 인지는 물론 불안도 그 전염력 덕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30쪽, 「수렵민적 인지 특성」

 

하지만 역사가 그렇듯 수렵・채집민은 정주형인 데다 다수자인 농경・목축민에게 점차 밀려났다. “몸싸움에선 합리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었던 고혈압”이 안온한 오늘날엔 질병이 된 것처럼, 수렵・채집민의 예리한 지각은 농경・목축민들에겐 과대한 망상으로, 분열로, 잘못된 것으로 인식되어갔다. 분열병은 이렇게 태동했다. 저자에 따르면 분열병은 문명 충돌의 부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정신병은 일면 만들어지기도 한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의 문명사회에도 ‘분열병 친화자’가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특유의 예리함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알맞게 대처한다. 이성 관계에서 상대방과 유연히 교감하는 것을 일례로 들 수 있는데, 이러한 특성 덕분에 ‘분열병 친화자’는 소수이면서도 여전히 도태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왜 S친화자는 도태되지 않는 것일까, 라는 것에 대한 대답은 그에 대한 종래의 대답인 ‘고통과 결핍’에 대한 내성보다도 오히려 성적 파트너를 획득하는 데 유리하다는 점에 있고, 그것이 자손을 남길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쪽을 나는 선택하고 싶다.
-53쪽, 「인류학적 유리함」

 

 

‘집착’하는 직업윤리
강박증 강요하는 사회

 

정돈과 청결, 적어도 청결하려는 의식, 정연하게 질서가 잡힌 세계의 이면에서 꿈틀거리는 도깨비 세상과 거기에 대한 주술적 간섭, 그리고 간헐적인 공격성 분출, 권력과 지배의 질서—이것은 바로 강박증 구조 그대로다. “문화에 숨어 있는 불쾌한 것”(프로이트)은 가장 이른 시기의 농경 사회 때 이미 성립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33쪽, 「농경 사회의 강박증 친화성」

 

수렵・채집민과 분열병과 관한 이야기는 제2장 「집착기질의 역사적 배경」에서 자연스레 농경・목축민과 강박증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저자에 따르면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는 문화, 질서를 추구하는 문화, 계량하고 계측하는 문화에는 강박증의 씨앗이 들어 있다. 저자는 ‘집착기질’을 강박증의 전조라고 칭하는데, 이것은 ‘분열병 친화성’과 대립 쌍을 이루는 것으로서 다수자의 기질이고, 질서와 배제의 논리 위에 유지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집착기질’이 유독 발전의 동력이 되어온 사회, 강박사회 일본을 주목한다.

 

시모다(시모다 미쓰조)는 사실 그 ‘집착기질자’들이 “타인으로부터 확실한 사람으로 신뢰받고 모범 청년, 모범 사원, 모범 군인 등으로 칭찬받는 종류의 사람이다”라고 단언한다.
-61쪽, 「‘응석’의 단념」

 

일본에서 ‘집착기질’을 지닌 사람은 특유의 근면성실함 때문에 “모범”으로 인식되지만, 그런 인식은 사실 그리 오래지 않아,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에 따르면 18세 후반, 에도시대 중기에 도입된 화폐경제에 적응하려고 농촌 개조에 앞장선 것이 ‘집착기질자’들이었으며, 이 때문에 ‘집착기질적 직업윤리’가 사회의 주된 실천윤리로서 고개를 들었다. 그것이 지금껏 일본 사회를 지탱해온 것이다.
하지만 “모범”이었던 집착기질자들 중 많은 수는, 고도성장이 끝난 뒤의 일본에서 보듯, 우울증 내지 강박증이라는 파탄을 맞았다. 집착으로 일군 성공 뒤에, 즉 더 이상의 목적을 상실한 뒤에 이어지는 불안과 우울. 이것이 과연 일본 사회만의 문제일까? 『분열병과 인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일본에만 그치지 않는 열린 논의로 확장된다.

 

 

주술 치료, 마녀사냥의 광풍, 정신병원의 탄생…
정신의학의 역동적 흐름

 

『분열병과 인류』의 백미는 이 책 분량의 3분의 2를 할애하고 있는 제3장 「서구 정신의학 배경사」라 할 수 있다.
분열증과 강박증은 근대 이래의 개념이지만 정상과 비정상, 정신장애에 대한 탐구는 고대부터 계속됐다. 그런데도 ‘그리스・로마 / 이슬람 / 서구’의 정신장애 치료 문화는 각각 독자적인 길을 걸은 것으로 인식돼왔다. 「서구 정신의학 배경사」는 이들 3자를 ‘정신의학사’라는 하나의 역사로 통합하는 시도다. 저자는 종으로는 역사상의 시간을 따라, 횡으로는 유럽과 아시아와 아메리카 등 대륙을 넘나들며 정신의학 발전사를 치밀하게 엮어간다.
서구 정신의학 배경사에서 저자가 가장 깊이 관심을 두는 건 실상 종교적이지 않은 이유에서 발생했다고 할 ‘마녀사냥’이다. 저자는 근세에 있었던 마녀사냥을 단지 맹목적 신앙으로 일순간 불어닥친 집단 비이성의 산물로만 치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화폐경제의 침윤에 따른 농촌 안정성의 붕괴, 이를 더욱 악화시킨 16세기 이후의 기후 한랭화와 신대륙으로부터의 은 대량 유입, 종교전쟁, 페스트 유행과 인구 감소, 그것이 야기한 극도의 불안감”(「옮긴이의 말」) 등이 중세 유럽을 마녀사냥이라는 광기로 수렴시킨 역사적 맥락이다.

 

일반적으로 르네상스의 정신(廷臣)들은 화폐경제의 침투하에서도 급여를 충분히 받지 못했으며 실직 기회는 많았다. 마녀사냥은 법관직의 수요를 증대시켜 그 지위를 확실하게 만들어주었다. 마녀의 재산은 몰수당해 재판관의 재산을 불려줌으로써 적어도 중반부터는 마녀사냥 재판관에게 큰 매력을 안겨주었다. 몰수가 금지되면 반드시 마녀사냥이 쇠퇴한다. 그러나 그것뿐만이 아니다. 민중이 마녀사냥에 환호하며 맞아들인 예가 종종 있고, 또 그런 지지가 없으면 마녀사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면 왜 민중은 마녀사냥을 지지했을까? 그것은 마녀가 무슨 죄를 뒤집어썼느냐를 보고 추측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마녀가 덮어쓴 죄는 대부분 수확이 예정대로 되지 않았다든가 암소가 젖을 내지 않았다든가 폭풍이 수확을 망쳤다든가 밭에 달팽이 떼가 나타나 양배추밭을 망가뜨렸다는 등의 생산력 감퇴에 관한 것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149~150쪽, 「마녀사냥이라는 현상」

 

근대 시민사회의 성립과 정신의학의 태동 아래 마녀사냥은 종식됐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다. ‘지배의 윤리’들은 언제나 자가 동력을 위해 배제와 차별 그리고 착취의 근거가 늘 필요했고, 정신병과 정신병원은 거기에 억압의 기제로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치유의 기제로서 동원되었다. 저자는 ‘근면의 윤리’를 강요한 청교도혁명, 이념적 이유로 자국 과학의 비약적 발전을 부추긴 스탈린 시대 등 온갖 역사적 정황들을 종합해 정신의학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발전했는지 읽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