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당한 불량소녀, 사미라 벨릴
   ─15년 동안의 지옥 같은 방황기


사미라 벨릴은 열네 살에 처음으로 윤간당한 후 같은 해 또 한번 강간당했으며, 열일곱 살이 되던 해 또다시 윤간당하는 불행을 연거푸 겪은 여성이다. 스물아홉이 되던 해, 강간의 후유증을 치료하고 마무리하는 한 권의 책을 펴내기까지 무려 15년 동안 지옥 같은 방황기를 보냈다.


스물아홉 살의 여성이 자신의 고통스러운 체험을 공개적으로 출판했다는 것은 단지 충격적인 뉴스거리로만 치부할 수 없다. 본인에게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씻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한 발판이자,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는 사회의 차가운 통념을 향한 발언이기도 한 것이다.


사미라 벨릴은 이 책을 통해 “성폭력 사건을 단지 한 개인에게 일어난 불행한 사건으로 국한시켜서는 안된다”라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강간의 피해자를 오히려 죄인 취급하거나, ‘불량소녀는 보호할 가치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편견이 피해자의 고통을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나는 인생을 믿는다』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폭력의 실태와 강간에 대한 잘못된 통념으로 발생되는 2차 폭력의 고통을 강렬하고도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은 일상화된 성폭력에 대한 충격적인 보고서이자 짓밟힌 인격을 일으켜 세우고 기어이 재기에 성공하는 사미라 벨릴이라는 한 여성의 눈물겨운 고군분투기이기도 하다.

“사미라는 지옥을 경험한 여자다. 다른 여자아이들은 마약에 빠지거나 매춘 또는 정신이상에 이르렀지만, 그녀는 모범적으로 재기에 성공한 케이스이다. 그녀는 이제 스물아홉 살의 장래가 유망한 젊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다. 인생역전, 변신, 어둠에서 빛으로 나옴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미라는 자기와 같이 짓밟힌 어린시절을 보내고 절망 속에 지내는 여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이 글을 썼다. 특히 그런 여자들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한다.” (「책머리에」 중에서)



프랑스에서 화제와 논란이 되었던 책


『나는 인생을 믿는다』(원제: 고통의 지옥에서 Dans l’enfer des tournantes)는 2002년 프랑스 현지에서 발간되자마자 《리브르 엡도 LIVRES HEBDO》(‘주간 책’) 베스트셀러 비소설 부문 7위에 오르며 각계각층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프랑스의 언론들은 이 책의 발간을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이 책의 발간은 한 개인에 대한 차원을 넘어 청소년 문제의 실태를 뼈아프게 체감하고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도시에서 일상화되어버린 성폭력에 대한 충격적 묘사에 그치지 않는다. 이 글은 또한 청소년기의 여자들이 처한 참을 수 없는 두 가지 노예 상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집에 갇혀서 순종하며 지낼 것인가 아니면 ‘먹이’가 될 위험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갈 것인가.
─《르 몽드 Le Monde》

수치심, 죄의식, 모욕감 속에 살던 젊은 여자가 스물아홉 살에 침묵의 법칙을 깨뜨리다. 오랜 치료 끝에 그녀는 소위 ‘골치아픈’ 동네에서 일상화되어버린 성폭력을 글로 폭로한다.
─《뤼마니테 L’humanite》

그녀는 현재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상가 거리에 있는 허름하지만 따뜻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새로 고친 마룻바닥, 화려한 색채의 커튼, 해가 반사된 거울, 그리고 벽에 걸린 그녀의 그림들과 모자이크 작품들이 그녀의 현재 삶을 말해주고 있다. 그녀는 특히 지난 15년 동안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던 ‘희생자’라는 신분을 버렸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리베라시옹 Liberation》

이제 그녀는 ‘미스 윤간’ ‘특별한 일의 경험자’라는 시선을 개의치 않는다. “나는 한 번, 두 번, 세 번 강간당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제 나는 치료되어서 여기 이렇게 있다. 나는 나의 고통보따리를 풀어헤쳤고, 마침내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
─《르 파리지엥 Le Parisien》

이 책은 아버지의 구타와 어머니의 침묵을 견디지 못해서 거리로 뛰쳐나온 소녀의 이야기이다. 그녀의 청소년기는 ‘환경이 그녀에게 강요하는 의무와 자유롭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의 방황’이었다. 그녀의 지옥 같던 방황기는 마침내 이 책으로 마무리되고, 그녀는 15년간 짓눌려 살아온 죄의식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누벨 옵세르바퇴르 Le Nouvel Observateur》



청소년 성 문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보통의 청소년기 소녀들은 부모가 요구하는 의무와 자유롭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집에서 살림을 돕고 동생들을 돌보며 학교 갈 때에만 외출하는 ‘착한 소녀’로 지낼 것인가. 금기를 깨고 방종을 즐기는 ‘불량소녀’의 길을 택할 것인가. 알제리에서 프랑스로 이민 온 맞벌이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미라는 아버지의 구타와 욕설, 어머니의 강요를 견디다 못해 가출을 택한다. 하지만 보스의 우상화와 함께 불량청소년 서클의 힘이 막강해진 도시의 뒷골목은 또다른 억압을 예견하고 있었다. 특히 가출한 어린 소녀들은 불량배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었다.


사미라는 열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윤간’이라는 끔찍한 폭력을 체험했다. 이처럼 감내하기 힘든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미라는 항의하고 고소하는 대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수치심과 불량배들의 협박, 그리고 자신이 당한 일이 법적으로 처벌받을 범죄라는 사실조차 몰랐던 무지가 열네 살의 어린 소녀로 하여금 침묵을 택하게 했던 것이다.


사미라의 고통이 외부로 알려지게 된 것은 사미라와 같은 일을 겪은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그들과 함께 고소를 하기로 결정했지만, 그것은 그녀의 상처를 아물게 하기는커녕 덧내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보호막이 되어주어야 할 부모조차 그녀의 편이 되어주지 못했다.


“넌 창녀야! 꺼져버려. 짐 싸가지고 나가란 말이야!”라며 그녀를 할퀴는 아버지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란 말이야! 앞만 보고 나가는 거야!”라고 모든 것을 미봉해버리려는 어머니에게서 그녀는 아무런 지지를 받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은 “넌 왜 도망칠줄 몰랐던 거니? 왜 너는 좀더 자신을 방어할 수 없었던 거지?”라는 의심의 시선을 보내고, 성폭력을 당한 미성년을 보호해준다는 단체의 변호사조차 “열네 살짜리가 그 시간에 뭐 하러 밖으로 돌아다니지?”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피해자가 아닌 죄인 취급을 받으며 지쳐버린 사미라는 자학과 폭력으로 세상에 대응하기 시작한다. 대마초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언제라도 싸울 준비를 하고 시빗거리를 찾아다녔다. 그녀는 이 시기의 자신을 ‘야생동물’, ‘시한폭탄’, 그리고 ‘헝겊인형’으로 정의한다. 사미라는 자신을 억눌렀던 분노를 간질 발작을 통해 표출하고, 자신을 ‘걸레’라고 부르는 이들을 향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가 하면, 마지막 자존심마저 내팽개치고, 매춘의 길에 빠져들기도 한다.



불량소녀, 인생을 발견하다


사미라 벨릴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던 다른 소녀들처럼 매춘과 대마초로 철저히 파괴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옥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완전히 침몰하지 않으려 애썼고, 직업교육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지는 등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받고 치료받지 못한 상처는 10여 년 동안 아물지 않은 채 그녀를 괴롭혔다.


방황을 끝내고 고통과 정면대결하고자 결심한 것은 그녀 나이 스물네 살 때였다. 그러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그녀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전문적인 심리상담가를 만나는 일이었다. 사미라는 ‘파니’라는 상담가의 도움으로 헝클어졌던 자신의 고통을 대면하고, 어린시절로 거슬러 가 자신의 역사를 새롭게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하나 그녀의 삶을 제대로 궤도에 놓일 수 있도록 해준 것은 피해자 구제기관을 상대로 한 재판에서 승소한 일이었다. 10여 년 전 사건 발생 당시, 변호인의 불성실함으로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던 사미라였지만, 이제는 법정에서 스스로를 당당히 변론하고 그 대가를 지불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상담이나 재판만으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미라는 책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기에 이른다. 자신의 체험을 가감없이 서술하여, 자신을 믿지 못했던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고통의 청구서’를 나누어가져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또 다시 고통을 재생하는 일이었지만, 또 한편 자기를 성찰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했다.


그녀가 책을 집필하는 데 도움을 준 ‘조제 스토카르’는 “어떤 충격적 사건은 우리 인생에 새져진 상처일 뿐, 운명은 아니다”라는 말로 그녀의 인생 역정을 설명한다. 극도의 불행 속에서 당당히 재기에 성공한 사미라 벨릴은 자신과 같은 ‘불량소녀’ 또는 ‘강간당한 소녀’들을 섣불리 낙인찍지 말고 그들에게서 가능성의 싹을 발견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