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년 <임팩 더블린 문학상> 수상작


2008년 <임팩 더블린 문학상International IMPAC Dublin Literary Award>은 라위 하지Rawi Hage의 장편소설 『드 니로의 게임』에 돌아갔다. 이 문학상은 영어권의 단일 작품에 가장 많은 상금(10만 유로, 2억 원)을 부여하는 상이다. 국내에 잘 알려진 작가 오르한 파묵(2003년, 『내 이름은 빨강』)이 역대 수상자 중 한 사람이다. 2008년에는 폴 오스터, 이사벨 아옌데, 존 업다이크, 토머스 핀천, 마거릿 애트우드 등의 작품을 비롯하여 코맥 매카시(2007년에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최종심에 올랐다)의 『로드』가 예심에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쟁쟁한 경쟁자들의 작품을 제치고 수상을 한 『드 니로의 게임』은 놀랍게도 아랍계 작가 라위 하지의 데뷔작이다. 국내에는 처음으로 소개된다.


“이 기쁜 날,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축제적 분위기로 술렁거리는 가운데서도 자신이 상실한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슬퍼하는 주인공처럼 저도 같은 심정으로, 의미 없는 한 전쟁에서―모든 전쟁이 다 의미 없습니다만―죽어간 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


인류 역사는 전쟁과 분열, 피 흘림, 피난민의 행렬, 비참함으로 가득합니다. 저는 아프리카의 어린이가, 세상이 바로 제 것인 것처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날을 고대합니다. 팔레스타인, 과테말라, 이라크, 아프간의 어린이들이 소유하고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집을 갖게 되기를 갈망합니다. 우리 인간들은 모두가 정주자이자 방랑자이기 때문에, 언제고 각자 걷는 길이 교차할 수밖에 없다는 것과, 이때 이 길들이 실은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날을 저는 고대합니다.”


―수상소감 중에서


“(…) 소설의 제목은 운에 달린 게임을 가리킵니다. 영화 <디어 헌터>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보여준 러시안 룰렛 게임, 죽음에 도전하는 그 게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영화와는 전혀 다르지만 극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그들은 1980년대 베이루트를 휘몰아친 내전에 꼼짝없이 휘말립니다. 작가 라위 하지의 글을 읽는 독자는 그러한 전쟁이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을 가까이서 보듯 충격적으로 목격하게 됩니다. 조지와 바쌈, 이 주인공답지 않은 주인공들의 운명을 통해서 작가는 전쟁이 어떻게 인생을 집어삼키는지,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죄의식과 순수라는 개념은, 우박처럼 쏟아지는 폭탄과의 생존 투쟁에서 버둥질치도록 내팽개쳐집니다. 산다는 것, 그 자체는 진정한 승자가 없는 게임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남는 것은 상처투성이의 생존자들뿐이며, 이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그 어느 총상보다 깊고, 미래에 대한 전망은 등화관제가 내려진 도시보다 더 어둡게 느껴집니다.


『드 니로의 게임』은 또한 우정과 배반, 사랑과 상실을 다룬 온정적인 소설입니다. 전쟁으로 파괴된 베이루트는 젊은이들이 만용을 부리는 곳이 됩니다. 이곳은 약탈을 일삼는 의용군으로 가득한 도시입니다. 의용군들은 자신들의 경계구역에 몰려다니는 미친개들에 비유됩니다. 사람들이, 극한 상황과 가슴 아픈 배반이라는 피로 물든 운명으로 점차 끌려 들어가는 도시인 것입니다.


(…)


제3의 언어로 글을 쓰는 작가에게는 엄청난 성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이 수상작으로 선정된 데 운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독창성과 힘, 그리고 서정성과 더불어 인도주의적인 호소력이 『드 니로의 게임』을 최고의 문학적 재능을 지닌 작품으로서 우리를 매혹합니다. 라위 하지는 진정 이 상을 받을 만합니다.”


―심사평 중에서



1980년대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한 사실적인 소설
전쟁으로 황폐화된 베이루트에서 성장하는 두 소년


1만 개의 폭탄이 떨어졌고 나는 조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강렬한 문장을 시작으로 총알을 난사하듯 빠르게 전개되는 『드 니로의 게임』은, 저자가 성장기에 9년간 겪은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한다. 소설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다. 전쟁은 삶의 터전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미래까지 통째로 집어삼킨다. 그들은 전쟁터에 있어본 자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거칠고 뜨거운 생의 몸부림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들 중 두 사람이 바로 ‘바쌈’과 ‘조지’다.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바쌈과 조지는 전쟁이 망가뜨린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함께 자라난다. 그들의 집은 전쟁에 부서졌고, 삶의 진실도 행복도 사랑도 ‘1만 개의 폭탄’이 떨어질 정도로 일상화된 폭격에 박살이 났다. 둘은 폭력으로 물든 세계에서 차츰 나이를 먹어간다. 이제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둘 중 하나다. 황폐화되고, 타락한 출생지에 남느냐, 아니면 영원히 떠나느냐.


바쌈
고등학교 중퇴, 17세 전후.
마주눈(아랍어로 ‘미친놈’)이라 불린다. 전쟁에 가족을 잃고, 친구 조지에게 애인까지 빼앗기게 된 그는 폭격도, 폭력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현실 세계의 니힐리스트이자 미지의 세계를 늘 동경하는 몽상가인 한편, 철두철미한 복수주의자revenger이기도 하다. 죽음의 도시 베이루트에서 독립형 인간 바쌈이 꿈꾸는 건 하나다. 다른 세계와 더 나은 삶. 그는 부두의 크레인 조정이나 가짜 양주를 유통시키는 일을 하며 베이루트 탈출자금을 마련한다.


조지
고등학교 중퇴, 17세 전후.
바쌈의 한 동네 친구. 프랑스인 아버지와 레바논인 어머니 사이에 난 혼혈로, 별명이 ‘드 니로’다. 조지는 폭력과 결탁한 권력에 유혹받은 나머지 군(크리스천 의용군)에 입대한다. 오래잖아 권력에 맛들인 그는 암흑계의 악취에 찌들고, 폭력적인 생활과 고문, 그리고 마약, 알코올, 섹스에 빠져버린다. 그 모든 게 자신과 친구 바쌈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로.



친구마저 서로 배반하고 복수하게 하는 전쟁
그들이 벌일 수밖에 없는 ‘드 니로의 게임’


전혀 다른 두 방향으로 내닫던 바쌈과 조지는 결국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전쟁이 그들을 서로 배반하고 복수하게 만든 것이다. 헤어날 수 없는 전쟁 때문에 권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 민족주의자와 무국적주의자, 퇴폐주의자와 허무주의자로 버성기던 두 사람은 여러 번 부딪치다 급기야 정면으로 충돌하고 만다.


조지가 웃었다. 그리고 권총을 들고는 회전식 탄창을 돌렸다. 드 니로는 끝내주는 명배우다. 바쌈, 너 그 영화 장면 기억나? 드 니로가 자기의 제일 친한 친구와 맞상대하게 된 장면? 넌 내 제일 친한 친구이자 내 형제다. 정말이야.(212쪽)


베이루트를 떠나려는 바쌈을 잡으러 온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그의 친구 조지다. 운명의 기로에서 조지는 마지막으로 바쌈에게 ‘러시안 룰렛 게임’을 제안한다. 누가 승자랄 것도 없을 내기에 바쌈은 마지못해 응하고, 홀로 베이루트를 탈출하게 되는데…….


소설의 제목 ‘드 니로의 게임’은 <디어 헌터The Deer Hunter>(1978)에서 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벌인 러시안 룰렛 게임에 닿아 있다. 이 소설에도 나오듯 실제로 수많은 베이루트 젊은이들이 희망 없는 전시에 드 니로의 게임을 하다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드 니로의 게임’은 전쟁이라는 늪에 빠진 레바논의 젊은이 ‘조지’가 벌이는 인생의 게임이면서, 조지와 바쌈 두 사람이 벌일 수밖에 없는 운명의 게임이기도 한 것이다.


한편 이 소설에서 주목할 것은 레바논이 서부 베이루트(이슬람 진영, 공산주의)와 동부 베이루트(크리스천 진영, 자유민주주의)로 갈려 싸우는 상황에서 강대국인 프랑스와 종교이념국인 이스라엘이 동부 베이루트의 크리스천 세력을 돕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만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전쟁은, 유사 이래 인간 존재가 감당하기 힘든 폭력임을 『드 니로의 게임』이 생생하게 말하고 있는 것과 더불어.



누아르영화처럼 거칠고 뜨거운 소설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청춘처럼!


라틴어군(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어)의 소설에서는 대화에 큰따옴표가 잘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글 소설에서나 영어권 소설에서는 그리 흔치 않은 방식이다. 이 소설에서 큰따옴표의 부재는 소설의 속도감과 유동성에 크게 기여하며, 화자인 바쌈의 의식 세계와 실재의 경계선이 선명하지 않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보조적 역할도 하고 있다. 동시에 청춘과 분노, 그리고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같이 흥미진진하게, 시처럼 긴장감 있고 탄탄하게 드러나게 해준다.


독자들은 큰따옴표가 없는 소설을 읽으며 색다른 맛을 느낄 것이다. 화약내와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폭력, 마약, 고문, 섹스가 넘쳐나는 거칠고 뜨거운 누아르영화를 보듯이 말이다. 『드 니로의 게임』은 그야말로 데카당하고 하드보일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