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대표적인 사진작가 소피 칼, 『진실된 이야기』 『뉴욕 이야기』 동시 출간


소피 칼Sophie Calle은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예술가다. 2003년 퐁피두 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그녀의 작품전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대표작가로 선정되었다. 26세에 처음 사진 작업을 시작한 그녀는 27세가 되던 해인 1980년, 파리 비엔날레에서, 27명의 사람들이 교대로 그녀의 침대에서 잠자는 모습을 사진과 함께 기록한 작품 <잠자는 사람들Les dormeurs>로 대중에게 처음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후 그녀는 사설탐정을 고용하여 자신을 미행하게 하고 그 자료와 사진으로 구성한 『미행La filature』, 호텔 여종업원으로 일하며 손님이 빠져나간 객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그들의 이야기를 허구로 재구성한 『호텔L'h?tel』, 길에서 주운 전화번호 수첩의 주인을 추적하기 위해 수첩에 적힌 인물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인터뷰한 『전화번호 수첩Le carnet d’adresses』, 자신을 모델로 한 인물이 등장하는 폴 오스터Paul Auster의 『거대한 괴물Leviathan』에서 영감을 얻은 『이중 게임Double-jeux』 등의 작업을 통해 글과 이미지, 현실과 허구가 혼합된 형태의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진실된 이야기Des histoires vraies』 『뉴욕 이야기Gotham Handbook』는 이처럼 ‘새롭고 기발하며 자유로운’ 소피 칼의 예술 세계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책이다.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풀어가는 『진실된 이야기』와 소설가 폴 오스터와 함께 "현실과 허구의 관계를 어떻게 놀이로 즐길 수 있는가"를 보여준 『뉴욕 이야기』는 소피 칼이 만들어낸 ‘이야기의 세계’를 독특하게 보여준다.



이미지 시대, 이야기는 어떻게 계속되는가


소피 칼에게 자신의 삶과 일상, 그리고 육체는 작품의 대상이다.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 이를 위해서 고의로 연출하는 어떤 행위가 곧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녀는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자기 존재를 주체에서 객체로 전환시켜 스스로를 타인처럼 느끼게 한다. 이는 ‘상상 속의 인물’ ‘낯선 사람’이 된 듯한 자신을 바라보는 것, 즉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그녀는 자신의 많은 작품에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것이 진실임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는 없다. ‘그녀는 작품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소피 칼의 이러한 예술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인 『진실된 이야기』는 아홉 살 때부터 마흔아홉 살 때까지의 중요한 ‘추억’들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사진으로 증명해 보이며 유년시절, 가족과 친구, 결혼생활과 이혼 등의 자전적인, ‘진실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것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허구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소피 칼의 작품에서 진실과 허구를 판별해내는 것은 중요치 않다. “진짜 이야기를 하면서 거짓 이야기를 즐기게 만드는 것, 혹은 거짓 이야기를 진짜처럼 속게 만드는 것”, 곧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여 함께 놀이를 즐기는 것이 바로 소피 칼이 작품을 만드는 의도이기 때문이다.

『진실된 이야기』는 1994년 초판이 출간될 당시 이미지와 글을 연결시킨 ‘자전문학의 새로운 장르’로 평가되며 많은 대중적 관심을 받았다. 소피 칼은 『진실된 이야기』에서 사진 속의 지극히 “평범한 혹은 아무것도 아닌 대상”에 글을 덧붙임으로써 “이야기가 가득 찬 대상”으로 변모시킨다. 글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보았던 사진이 어느새 다른 작품으로 읽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소피 칼이 보여주는 새로운 방식의 이야기하기는 “이미지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이야기꾼이 어떻게 계속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소피 칼과 폴 오스터의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게임’ 『뉴욕 이야기』


소설가 폴 오스터는 자신의 소설 『거대한 괴물』에서 소피 칼의 삶과 작품을 모델로 한 ‘마리아 터너’라는 인물을 창조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소설 속 허구의 인물로 등장한 것에 매력을 느낀 소피 칼은 자신의 방식대로 현실과 허구를 뒤섞어 폴 오스터의 소설과 놀이를 즐기기로 한다. 이 작업은 총 7권으로 이루어진 『이중 게임』이라는 전집으로 소개되었는데, 『뉴욕 이야기』는 그중에서 마지막 7권에 해당한다.

『뉴욕 이야기』는 폴 오스터가 소피 칼에게 보낸 “뉴욕에서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소피 칼이 개인적으로 사용하게 될 교육 입문서”에서 시작된다. 폴 오스터가 소피 칼에게 건넨 이 시나리오는 ‘뉴욕에서 아름답게 사는 방법’에 관한 조언이다. 그가 권하는 네 가지 방법은 바로 미소 짓기, 대화하기, 걸인과 노숙자에게 배려하기, 한 장소를 나 자신의 일부인 것처럼 가꾸기다. 소피 칼은 그의 글에 ‘고담 핸드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를 그대로 따르기로 한다. 『뉴욕 이야기』는 소피 칼이 폴 오스터의 이러한 조언에 충실히 복종하며 실천하는 자신의 행위를 사진과 글로 기록한 책이다.

소피 칼은 시나리오에 따라 매일 거리로 나가 타인들에게 미소와 말을 건네고, 샌드위치와 담배를 권한다. 또 길가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 하나를 점령하여 꽃과 각종 물건들을 갖추고 아름답게 가꾸고 관리한다. 그녀는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기도 하고, 타인을 만나야 하는 고역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한다. 또 그녀 나름대로 아름답게 꾸며놓은 공중전화 부스를 보고는 이곳에서 사람이 죽었냐며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들도 만난다.

폴 오스터의 시나리오와 소피 칼이 게임을 벌이는 이 작업은 미소도, 대화도 없는 이 익명의 도시에서도 타인은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으며, 바로 그 타인이 나의 삶을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쓸쓸한 타인의 도시” 뉴욕의 단편들을 통해 나의 존재와 나를 둘러싼 세계, 타자와의 관계를 환기시켜준다.


“나는 당신에게 이 세상을 다시 만들라고 요구하지는 않겠어요. 다만 나는 당신이 이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자신보다 당신을 둘러싼 것들에 대하여 더 많은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적어도 당신이 밖에 있을 때, 이곳에서 저곳으로 길을 걷고 있을 때만이라도요.”
―폴 오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