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센터 재건축 설계 주역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열정과 모험담 2003년 2월 28일자 《뉴욕 타임스》는 취재기자들과 사진기자들에게 둘러싸인 한 건축가의 사진을 1면에 게재하였다. 그는 911테러로 사라진 세계무역센터(이하 WTC) 재건축 설계 공모에서 당선된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였다. WTC 재건축 사업은 단순히 WTC를 '다시 짓기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이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그날의 기억을 되새기는 동시에, 상처와 충격을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짓겠다는' 의지였다.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를 재창조할 주역으로 선정된 다니엘 리베스킨트, 그에게 쏟아진 관심과 기대는 이와 같은 '희망'에 대한 바람이기도 했다.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WTC 재건축 프로젝트 이전에도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대영 전쟁박물관, 덴버 미술관 등을 설계하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건축가다. 우리나라에서는 네모반듯한 도심의 일상에 과감한 터치를 가한 삼성동 현대산업개발 본사 외관을 디자인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기존의 고정된 건축언어를 부정하고 해체하는 그의 대표작들은 "도대체 어떻게 저런 건물을 설계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낙천주의 예술가』(마음산책 펴냄)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예술가는 건축을 못하지만, 건축가는 예술을 할 수 있다


1946년 폴란드,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끔찍한 사건을 경험했지만, 마지막까지 사람의 천성은 선하다"고 믿었던 아버지, 박학다식하고 현명하고 담대했던 어머니는 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예술가는 건축을 못하지만, 건축가는 예술을 할 수 있다"라는 말로 리베스킨트가 미술에서 건축으로 진로를 정하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리베스킨트는 자신의 건축에 독특한 가족사가 투영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직접 겪은 것은 아니지만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자식으로 태어났기에 느꼈던 트라우마, 폴란드 공산정권하에서 보낸 회색빛 유년 시절, 폴란드에서 이스라엘로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이어지는 이주의 역사, 그로 인해 지울 수 없었던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통해 차별화된 건축을 만들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경험들은 그의 정체성을 구성하게 되었고 이는 리베스킨트의 건축언어를 읽는 데에 중요한 키워드를 제공한다.



세계적인 건축물이 탄생하기까지


"이 주전자가 세계라고 상상해보자"라고 말했다. 우리는 다 함께 낡은 주전자만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내 사고에 진전이 있었다. 아, 세계는 분쟁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지 않는가. 나는 주전자를 2층 창문에서 빈트샤이트 거리를 향해 내던졌다. 우리는 밖으로 달려 나가 큰 조각 몇 개를 주워 모았다. 우리는 그 조각들을 '파편'이라 부르기로 했다. 스튜디오로 들어와 파편이 건물 모양을 이룰 때까지 꿰맞췄다. 멀찍이 물러서서 맞춰놓은 품을 보니 주전자를 박살낸 보람이 있어 보였다.

리베스킨트는 빛, 소리, 보이지 않는 영혼, 장소 감각, 역사에 대한 경외 등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또 "우리는 모두 실제 존재하는 대상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힘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건물이 영적인 울림을 지니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같은 그의 태도는 리베스킨트가 자신의 대표작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깨진 컵의 파편에서 영감을 얻은 맨체스터 대영 전쟁박물관, 유대인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의 생애를 건축으로 옮긴 펠릭스 누스바움 미술관, 그리고 뉴욕 항에 배가 정박하는 순간 보았던 뉴욕의 스카이라인, 이민자들 틈바구니에서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바라본 자유의 여신상에 대한 기억을 담은 WTC 재건축 설계 등―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치열한 건축세계의 이면을 들여다보다


1989년,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설계 공모에 당선된 리베스킨트는 수많은 장애물을 넘고 넘어 1999년에 이르러서야 박물관을 공개할 수 있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박물관의 운명도 함께 흔들렸고, 그의 설계가 복잡하여 건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설립을 취소하려는 무리도 있었다. 그런데 이 같은 우여곡절의 역사는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뿐만이 아니다. 기존 건축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그의 건축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과 맞서야 했던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 예산이 깎이며 설계 방향을 바꾸어야만 했던 대영 전쟁박물관, 그리고 WTC 재건축 설계 공모의 경쟁 등은 건축세계의 이면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온 뉴욕을 뜨겁게 달구었던 건축계 최대의 교전, 프리덤 타워를 두고 빚어진 SOM과의 경쟁을 다룬 에피소드는 한 편의 건축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본문 10장 참고) 그라운드 제로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 공방전에는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실명까지 거론하고 있어 그 치열했던 현장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본질적으로 긍정적일 수밖에 없는 직업


그가 설계한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1999년 전시품이 없는 텅 빈 상태에서 공개한 후 현재까지 독일에서 관람객이 가장 많은 박물관으로 꼽힌다. 그는 전시품이 아닌 지즈재그형 건물, 바닥을 이리저리 기울여 추방과 이민의 고통을 느끼도록 한 통로, 어둠의 공간인 홀로코스트 탑 등의 설계만으로도 유대인들의 비극의 역사를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하였다. 그는 "건축이란 언어를 이용하여 돌멩이 하나하나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물"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이처럼 리베스킨트가 생각하는 훌륭한 건축이란 "인생의 굽이굽이 등장하는 갖가지 색을 모두 담아내"어 "영혼에 내재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축이다. 어떤 재료에나 고유한 '언어'와 '시'가 담겨 있고 다른 재료와 나란히 놓게 되면 운율이 바뀐다. 그는 돌, 쇠, 콘크리트, 나무, 유리처럼 말 못하는 물질을 가지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역사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울한 음악가가 단조의 음악을 작곡할 수는 있다. 비극에 천착하는 작가가 있을 수 있고, 절망에 집착하는 영화감독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건축가가 비관론자일 수는 없다. 본질적으로 건축은 긍정적일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그는 "살아 있는" 건물을 만들기 위해 "내가 설계하는 건물들이 반드시 지어지리라 믿고" 혹시 "내가 짓는 건물들이 내 의지에 반하여 언젠가 사라"지더라도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포착하여 건물에 그대로 담아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가는 "어떤 직업의 사람들보다 더 낙천적"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리베스킨트. "건축은 믿음을 토대로 한다"는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건축을 넘어 '인생'이라는 건축을 쌓는 데에도 커다란 울림을 남긴다.


"건물은 콘크리트와 철, 유리로 지어지나 실제로는 사람들의 가슴과 영혼으로 지어진다."
―다니엘 리베스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