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성 102인의 간절한 물음


9·11테러로 촉발되어 기독교 대 아랍 문명권의 충돌로 비화된 미국과 이라크 간의 전쟁, 그리고 남아시아를 삼킨 지진해일까지 인류 80퍼센트의 죽음과 기아와 고통이 상위 20퍼센트의 욕망과 혼탁하게 유영하는 21세기는 가난한 영혼의 시대다.


이 시대 세계 지성 102명이 신에게 물었다. “만일 신이 있다면 왜 이다지도 악이 많은가? 만일 신이 없다면 왜 선은 이다지도 많은가?” ― 라이프니츠 (「책머리에」에서)


‘돌에서 생명을 꽃피우듯’ 간절한 그들의 기도는 저마다의 마음밭에서 수도자의 투명한 시로, 참척을 인내하는 아비와 꺼져가는 생명 앞에 무력한 의사의 애끊는 절규로, 작가의 열정적인 울림으로, 상아탑의 경건한 고백으로 태어났다.


『내 영혼을 밝히는 물음』(원제 : 신에게 보내는 편지 )은 절대자를 향해 벌거벗은 인간, “신이 너무 침묵하는 것 같으니, 그를 불러야만 했”다는 인간의 진솔한 내면을 담고 있다.


프랑스의 대표 사상가 파스칼의 도발적인 단상으로 포문을 여는 『내 영혼을 밝히는 물음』은 프랑스에서 ‘금세기 최고의 휴머니스트’ ‘살아 있는 성자’로 일컬어지는 아베 피에르 신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전 이스라엘 총리 시몬 페레스, ‘카이로의 넝마주이’ 극빈자들의 친구 엠마뉘엘 수녀, 시사주간지 《르 푸엥》 창간자로 프랑스 유력 매체 《렉스프레스》 심의위원장 자크 뒤켄, 프랑스 및 이스라엘 변호인단 변호사 테오 클랭, 레바논 대주교 조르주 코드르, 프랑스 대랍비 조셉 시트뤽, 알제리 알제 대주교 앙리 테시에, 파리 유대교 제사장 가브리엘 파리, 프랑스 거주 이슬람인의 민의를 대표하는 뉴스메이커 프랑스이슬람문명평의회 CFCM 의장 달릴 부바쾨르, 영국 옥스퍼드대학 천체물리학 및 신학 연구원 칼릴 샴샴, 프랑스 암 전문 권위자 뤼시앙 이스라엘, 프랑스 문인협회 회장 알랭 압시르, 프랑스 최고 지성의 요람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최연소로 철학교수 자격증을 받은 작가 엘리에트 아베카시스, 종교계의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킨 베스트셀러 『모세』 『신이 된 남자』의 작가 제랄드 메사디에, 영화 <시티 오브 조이> 원작자로 캘커타 나병 어린이들을 위한 구호단체를 창설한 도미니크 라피에르 등 세계의 지성 102인이 솔직하고 대담한 시선으로 신과 교감하며 빚어낸 책이다.


102편의 글 중에는 창조주와 피조물 간에 입장이 전도되어 때로는 신이 곤란해지는 경우도 있다. 필자들의 요청에 따라 신은 문제를 풀거나 자신의 건강상태를 밝혀야 하고(천체물리학자 미셸 카세 「법적 권리를 지닌 이에게」 119~120쪽), 원고를 퇴짜 맞으며 신랄한 비판에 직면한다(작가 엘리에트 아베카시스 「‘창세기’라고 제목이 붙은 당신 원고 잘 받았습니다」 28~30쪽). 단 세 줄짜리 글로 동정받는 경우도 있다(전 카피라이터·작가 프레데릭 베그베데 「사람들이 당신을 위해 행한 모든 것들을 보시고도」 67쪽).



지식인 공동체의 공개서한


『내 영혼을 밝히는 물음』을 기획하고 엮어낸 르네 기통은 프랑스 문단 및 연극·영화·방송계에서 작가·편집자·저널리스트로 전방위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동 및 마그렙(튀니지·알제리·모로코) 현대정치·종교 전문가다. 북아프리카에서 나고 자라 어려서부터 이슬람 문화에 젖어 지냈으며 이슬람 땅에 자리한 교회의 존재를 감동 깊게 체험했다. 2001년 <자유상>, 2002년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주는 <몽티옹 Montyon 상>을 수상했다.


그가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책은 ‘모든 존재의 발행인’에게 보내는 지식인 공동체의 공개서한으로서 이 고요한 외침이 그 절실하고 성숙한 깊이를 성취하도록 세계적인 필자를 엄선하여 원고를 청탁하고 오랜 기다림을 통해 한데 모으는 산고를 거쳤다.

“창조자와의 만남, 그와 함께 수립할 수 있는 교환은 존재가 지닐 수 있는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비밀스런 부분에 관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우편물의 저자들은 도전에 응했습니다.”
─「책머리에」에서

“글쓴이가 누구건, 또 그들의 접근 방식이 어떻게 다르건, 모두가 상호보완적이며 깊은 휴머니즘을 담고 있는 이 편지들은 보다 높은 수취인을 향해 수렴되는 동시에 인간을 향해 말하”는 “하나의 모자이크”다. (앞글)


사제간이자 가톨릭의 대모, 대녀 사이로 불어권 대표번역가 심민화 교수와 백선희 씨가 책의 취지처럼 공동작업을 통해 옮겨냈다.



종교의 진정한 의미 ― 신의 존재를 묻다


종교를 뜻하는 영어 Religion은 ‘잇다, 연결하다, 재결합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Religare에서 왔다. 신과 통하는 것, 그것이 종교였다. 그러나 전쟁, 테러, 절대빈곤이 존재하는 세상은 원론적으로 신의 존재부터 묻게 하며, 인간 스스로도 자신의 창조자에게 닿을 끈을 놓아버린 듯,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린 듯 보인다.


한국의 입장은 혼란스럽다. 15세 이상 한국인 2명 중 1명(53.9퍼센트)이 종교를 갖고 있다(통계청 「2003 사회통계」). 그리스도교의 급격한 확산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2004년 9월 KBS가 영국 BBC와 함께 방영한 <세계는 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의 10개국(미국·영국·나이지리아·인도·레바논·멕시코·이스라엘·러시아·인도네시아·한국) 설문조사 결과, 한국인 응답자의 58퍼센트가 신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 한국이 무신론자가 가장 많은 국가로 나타났다. 한국에서 국제적인 신의 위상차, 통계차에 대해 세계 지성 102인의 ‘내 영혼을 밝히는 물음’은 ‘문제적’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역동적인 국가 중 하나며 세계적으로 가장 신을 믿지 않는 국가 중 하나인 한국에 묻는다.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그리 바쁘냐고. 그 신산한 삶의 이유를 묻는다. 이 책에서 신을 향한 인간들의 질문은 궁극적으로 출발점인 인간 자신에게로 돌아와 나지막이 자문하기 때문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한국인들에게 삶의 지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결국 인간 내면으로의 사색의 순간, 텅 빈 충만의 순간을 제안한다. 초월적인 절대자를 향한 질문은 태생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인 화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신을 잃어버린 인간은 이 책에서 신과의 관계 회복을 시도한다. 신의 제자리를 찾음으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 회복을 시도한다. 그동안 ‘신을 앞세운’ 폭력 앞에 너무도 많은 죽음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세계의 지성들이 신에게 묻는 도전적인 여정의 숨은 뜻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 여정이 밝은 빛 속에 끝나리라 믿고 있다.


『내 영혼을 밝히는 물음』은 희망으로 가득 찬 목소리다. 엠마뉘엘 수녀는 말한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사랑의 힘이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약하면서도 가장 강한 힘일 것입니다. 그 힘은 억압으로는 길러질 수 없습니다. … 당신께서 우리 각자 마음속에 씨앗을 심듯 내려놓는 숨결보다 더 강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으로 세상이 필요로 하는 힘을 만드느냐 못 만드느냐는 오직 우리에게 달린 일입니다.” ─ 사회학자·신학자 장 종슈레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라 부르시는 분께」 227쪽

<노벨평화상> 수상자 시몬 페레스의 글은 이렇게 마침표를 찍는다.

“이 책에 실린 편지들 가운데 일부는 밤에 씌어졌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편지들은 새벽을 알리는 메시지들입니다. 밤이 물러나고 하늘이 밝아오는 새벽 말입니다. 이 편지들은 촛불과도 같습니다.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 우리가 밝힌 것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분의 모습대로 태어났습니다」 2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