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저널리스트의 '세계를 보는 눈'


『정복자의 시선』은 프랑스의 지식인이자 진보적 저널리스트 에드위 플레넬의 대표적 문제작이다. 에드위 플레넬은 1952년 낭트에서 출생하여 파리의 정치학 그랑제콜 IEA에서 수학한 뒤, 1970년에 '급진공산주의자동맹(LCR)'에 가입, 기관지인 《적 Rouge》의 기자로 활동하는 등 10여 년간 좌파 운동에 투신한 전력이 있다. 1980년에는 '좌표 신문'으로서의 권위와 '중도 좌파'의 색채를 지닌 《르몽드》에 입사하여 탐사 저널리즘으로 두각을 나타내다가 1996년에 편집국장으로 취임, 찬사와 비판을 한 몸에 받으며 2004년까지 10년간 《르몽드》의 데스크를 지킨 유명 저널리스트다.


《르몽드 Le Monde》는 '세계'라는 뜻의 제호에서도 알 수 있듯 국제면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왔으며, '세계를 보는 눈'을 제공하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삼아왔다. 외신보다는 직접 특파원을 파견, 생생한 르포 기사를 제공하는 것은 《르몽드》가 내세우는 차별화된 강점이기도 하다. 『정복자의 시선』(원제: 『La De、couverte du monde·세계의 발견) 은 이러한 전통을 기반으로 탄생한 야심찬 르포르타주다.

이 책은 탄생 배경이 흥미롭다.


제2부 「콜럼버스와의 여행」은 1991년 부시의 '사막의 폭풍' 작전이 사담 후세인의 군대를 굴복시켰을 때, 콜럼버스의 발견 여정을 따라 두 달간 18개국(자치령 포함 21개국)을 직접 발로 뛰며 각국의 역사와 현 정세를 심층 취재한 결과물이다. 이 글들은 당시 《르몽드》에 연재되었다가 그 해 같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었다. 그리고 10년 후, 2001년 온 세계가 9.11테러의 충격에 휩싸였을 때, 10년 전의 여정을 떠올리며 당시에 열린 듯이 여겨지던 사유의 자취들을 좇고자 한 것이 이 책의 1부인 「혼합인」이다.

"…그렇다면 『정복자의 시선』은 아버지 부시의 '사막의 폭풍' 작전과 아들 부시의 9.11 테러 보복 전쟁 '충격과 공포'에서 탄생한 두 권의 책이 하나로 묶여 공명하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저자는 현장에서 생긴 즉흥적인 인상과 사건들에 서열을 매기거나 선별하지 않고 더없이 하찮아 보이는 '구두의 색깔'까지 메모해두고자 했다"고 2부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치밀한 현장감은 숱한 암시와 역설 등 저자 특유의 문체와 잘 어우러져 무거운 주제임에도 읽기의 재미를 더해준다. 프랑스에서 2002년에 발간된 이 책은 1년 6개월간의 번역과 1년간의 교정 교열 작업을 거쳐 한국의 독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메디치상〉 수상작가이기도 한, 저자 에드위 플레넬 문체의 질감을 살리고 시사 용어의 정확성을 확보하려는 편집 방침에 의해서였다. 국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서에 실린 각주 외에도 100개가 넘는 역주를 첨가했으며 2부에 실린 100여 컷의 사진 또한 원서에는 없으나, 편집부에서 직접 검색하여 수록한 것이다.


'역사'와 '시사'를 교차시켜 세계 정세를 읽는다

총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10년간의 간격을 두고 집필되었으며 시간상 역순으로 구성되었다.

1부 「혼합인」은 2001년 9.11 테러 발생 후, 문명사적 위기 의식 아래 쓰여진 글이다. 오늘날 지식인들의 가장 뜨거운 화두 중의 하나인 "미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하여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비판과 함께 반유대주의, 인종주의 등 서방세계 전반에 만연한 '오리엔탈리즘'을 폭로하고 있다. 저자는 서구 사회에 만연한 지적 위기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는 한편, 타자에 대한 이해를 넘어 적극적인 섞임을 추구하는 '혼혈'의 저항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2부 「콜럼버스와의 여행」에서 저자는 콜럼버스의 항해가 동양과 서양이 서로를 발견하고 지구촌을 이루며 살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강제이주, 식민지화, 강제노동 등 서양에 의한 동양 정복의 역사를 탄생시켰다는 사실을 통찰하고 있다. 이탈리아를 출발하여 쿠바, 아이티 섬 등 식민지배 경험을 지닌 중앙아메리카의 나라들을 거쳐 멕시코에서 마무리하는 이 여행기는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바라보고자'하는 시도에 따라 '역사'와 '시사'를 탄탄하게 교차시키고 있다. 여행 도정의 매단계마다 풍부한 고증과 자료를 바탕으로 과거 인물에 대한 회고와 오늘의 인물에 대한 인터뷰를 교차시키면서 펼쳐내는 2부는 기자 출신 저자의 역량이 한껏 발휘된 부분이다.



서방 세계는 타자를 어떻게 재구성했는가


이 책의 2부가 씌어졌던 1991년, 미국은 '사막의 폭풍' 작전을 통해 사담 후세인을 굴복시켰다. 그리고 10년 후, 2001년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에 테러를 당한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을 테러 책임자로 낙인찍고 또 한번 이라크 공격에 나섰다. 1991년, 그리고 2001년. 10년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부시' 부자의 전쟁을 두고 에드위 플레넬은 "우리 모두는 자신의 관행이 아닌 것을 야만이라 부른다"(57p)는 몽테뉴의 금언을 끌어온다. 저자가 보기에 '진보'와 '자유'를 빙자로 삼은 두 차례의 전쟁은 동양(야만) - 서양(문명)이라는 오래된 서방 세계의 편견을 반복, 재생산하는 '폭력'이요, '비이성'이다. 이러한 자가당착적 위기는 물론 미국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프랑스 자국의 현실 또한 돌아본다.

2002년 극우파인 르펜의 '국민전선'이 1차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당 후보를 이겼을 때 프랑스 사회는 커다란 충격을 맛보아야 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지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타자 일반, 특히 이주자, 유대인, 아랍인, 회교도, 외국인 등을 속죄양으로 만들어, 그들에게 경제 위기와 실업과 불평등과 불의 등, 이 세상의 온갖 불행을 해명하도록 명령하는"(49p) 우파의 논리는 타자 억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기만적인 해결책을 쉽게 유포시키기 때문이다.

미국과 프랑스의 정세에서 단적으로 드러난 혼혈 혐오, 반유대주의, 인종주의 등은 '타자 문제'로 요약될 수 있다. 플레넬은 '동-서'의 이항대립을 넘어, "타자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라는 보다 적극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에드워드 사이드, 한나 아렌트, 롤랑 바르트, 빅토르 세갈랑 등 '타자 문제'를 깊이 고민했던 여러 석학들을 초대한다. 1부 「혼합인」의 방대한 주석들은 저자의 적극적인 모색이 남긴 흔적들이다.

에드위 플레넬은 '우리 모두는 여러 문화들과 정체성으로 짜여져 있으며, '원초적 순수성이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타의 분리가 엄격하고, 타자 억압의 문화가 만연한 문화 속에서는 '혼혈'도 '저항의 정치'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혼혈은 강자에 대한 약자의 전략이다. 승자 앞에서 살아남고 패자를 구제하는 생존과 구제의 한 방식이다. "(113p) 는 발언은 보편적 인륜성을 회복하고 세계주의 휴머니즘에 가닿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를 보여준다.